이심전심이 잘 되려면
이심전심이 잘 되려면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식의 저주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두 번째가 바로 '내가 알고 있으면 남도 알 것이라는 착각'을 말합니다.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실험을 했답니다. 학생들을 교실 밖에 줄지어 세워 두고 한 명씩 교실 안으로 들어와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하게 했습니다. 플라스틱 필통 안에 연필 대신 사탕을 넣어두고, 그걸 학생 앞에서 달그락 소리가 나도록 흔들며 물어봅니다.
"여기에 뭐가 들었을까?"
"연필요"
학생은 당연히 사탕이 들어 있는 줄 모르니 연필이라고 답한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필통을 열어 학생에게 보여주면서 사탕이 들었다고 말해줍니다. "이제 알겠지?" 그러면서 한 번 더 물어봅니다.
"저기 밖에 있는 애들이 다음에 여기 들어왔을 때, 내가 필통을 흔들며 뭐가 들었을까? 하고 물어보면 저 친구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이때 학생은 당연히 자신이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연필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사탕이요" 하고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게 바로 내가 알고 있으면 남도 알 것이라는 착각이고, 이게 바로 지식의 저주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흔히 그런 실수를 많이 합니다. 내가 무언가를 알고 있고, 상대가 그걸 모를 때 우린 답답해하면서 바로 이렇게 소리칩니다.
"그것도 몰라?"
사실 나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면서 상대도 당연히 알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게 대화에서도 상당히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 서로 통한다는 말이지요. 아마도 요즘 언어로 한다면 '블루투스'가 되겠네요. 블루투스는 도대체 어떤 기술이 들어갔는지 몰라도 아주 편리한 장치입니다. 굳이 선을 연결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음악이 무선 이어폰으로 들리니까 말이지요.
이것처럼 사람도 내가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바로 대응해 주는 것이 이심전심입니다. 이게 기계에 적용될 때는 참 좋은 기능이지만,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문제가 많이 일어납니다. 일단 오류가 심하게 납니다. 상대가 화난 표정을 하고 있어서 마음을 읽고 가만히 있었는데, 화난 게 아니라 그냥 좀 피곤해서 가만히 있었을 뿐이라든지, 말 안 해도 배가 고픈 것처럼 보여, 그가 좋아하는 라면을 끓여놨는데 방금 밥을 많이 먹고 왔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는 능력을 잃어간다는 겁니다. 자신이 굳이 신경 써서 표현하지 않아도 다 알아서 해주니까 별로 표현할 일이 없는 겁니다. 그러다 진짜 제대로 표현해야 될 때는 버벅거리다가 기회를 잃어버리고는,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버럭 화를 내는 경우도 많지요.
상대가 내가 배가 고프거나 기분 나쁜 걸 알아채는 정도는 별 것 아니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렸을 경우에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이게 우리가 말하기가 제대로 안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아주 친한 사이에는 서로 말을 하지 않고 표정만으로, 또는 아주 짧은 말로 소통을 합니다. 그래도 소통이 되긴 하니까 점점 말로 표현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을 제대로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말귀를 못 알아듣는 상대를 탓하면서 눈치가 없다거나 이해력이 떨어진다고 탓하는 경우가 많지요.
사람의 병 중에 가장 고치기 어려운 병이 '말귀 못 알아듣는 병'이라면서 투덜거리기도 하지요. 그러면 상대는 탓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으면서 알아들은 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게 작은 일일 경우에는 괜찮지만, 사람의 생명이 달린 큰 문제일 때는 아주 심각한 일이 됩니다.
그래서 평소에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거도 짧게 하지 말고, 가능하면 길게 늘여서 말하면 더 좋습니다. 그러면 상대가 내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오면서 부인에게 "밥 줘" 하고 짧게 말할 것이 아니라 일부러 길게 이야기해 보는 겁니다.
"오늘 점심때 식당에서 김치찌개에 밥을 먹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라면을 아주 맛있게 먹고 있더라고. 라면 향이 얼마나 맛있게 느껴지는지 오늘 저녁에는 라면을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혹시 라면 끓여줄 수 있어?"
이렇게 말하면 준비하는 부인도 충분히 기분 좋게 제대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약에 "라면" 이렇게만 말하면 부인이 라면을 끓이면서도 '왜 갑자기 라면이라고 하지?', '내가 자기 몸종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하는 등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됩니다. 이러면서 서로 생각의 차이가 커지게 되고 사이가 멀어지는 원인이 됩니다.
사실 길게 이야기를 잘해도, 내 마음처럼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해됐나요?" 하고 물어보는 경우도 많은 거예요. 우린 이야기를 잘 전달했다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상대가 누구든지 내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말을 전달하는 나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강사들도 보면 똑같은 대상에게 아주 재미있고 쉽게 말을 잘 전달하는 사람이 있고, 아주 어려운 용어를 써가면서 지루하게 강의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재미있고 쉽게 전달하는 강사를 '명강사'라고 부르며 많은 곳에서 초빙도 일어납니다. 하지만 어렵고 지루하게 전달하는 강사는, 자신의 잘못은 모르고 청중들이 수준이 낮아서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투덜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상대가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의 빠르기에 따라, 말하는 사람의 표정에 따라, 말의 높낮이에 따라, 단어 선택에 따라 내 의사와 다르게 들릴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나와 같이 오래 생활한 사람은, 내 특성을 잘 아니까 내 생각을 잘 알아듣지만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겁니다.
말 전달하기 게임이 있습니다. 10명이 길게 늘어서게 한 다음, 진행자가 맨 앞사람에게 긴 문장의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걸 듣고 두 번째 사람에게 귓속말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 소리를 들은 두 번째 사람은 세 번째 사람에게 그걸 전달하지요. 그런 식으로 해서 마지막 열 번째 사람까지 도달하면 처음과 다른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바로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어렵다는 증거가 됩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말을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입니다. 자신이 잘 아는 몇몇 사람들과 앉아서 수다를 떠는 정도니까 말을 잘하는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할 뿐입니다. 또 길게 이야기해야 할 경우가 별로 없어서 그렇습니다.
만약 오늘 2시간 동안 영화 본 내용과 소감에 대해서 10분 정도 짧게 압축해서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대부분 제대로 하지 못할 겁니다. 이게 바로 내가 보고 들은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거기다 사람들 앞에서 서서 해보라고 하면 더욱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말을 잘한다고 착각합니다. 언제든 꼭 해야 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많은 사람들이 말을 잘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답니다.
여하튼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집에서나 회사에서 자꾸 길게 말하는 연습을 자꾸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껴보시고, 자신의 말하는 실력도 얼마나 늘어나는지 가늠해 보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림을 느끼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김홍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