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총 52편에 달하는 토지 드라마를 최종회까지 다 보게 되었습니다.
이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된 이유는, 지난 5월에 지리산 하동에 독서여행을 다녀오면서 최참판댁에 들른 후였습니다. 그때 마침 앞 마당에서 마당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소설 토지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중간부터 연극하는 걸 지켜보면서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용이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토지 소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안은미 여행작가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소설을 한 번 읽어봐야 되겠다고 했더니, 토지라는 드라마가 있으니 그것부터 먼저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드라마를 찾아서 보게 되었답니다. 드라마 길이가 무려 52편에 달하는데,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마다 계속 보다 보니 어느 듯 최종회까지 다 보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토지를 다 보고 난 소감을 생각나는 대로 말해볼까 합니다. 아니면 또 금방 잊어버리겠지요. 여기서 나오는 명대사나 깨달음도 참 많았답니다.
우선 난 하동 평사리에 갔을 때 최참판댁 큰 규모의 집을 보고 실제 최참판이라는 사람이 실제 존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니었습니다. 그 큰 집이 드라마 촬영을 위한 세트장이라고 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찾아보니, 박경리 작가가 어릴 적 그 지역 어딘가에 살던 조 참판이라는 사람의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사람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하튼 이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점은, 옛날 일제 강점기 때 양반과 평민 머슴들의 일상적인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드라마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과거 그 시대를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마을에 살던 사람들 전체 일대기가 다 나오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도 많이 얻게 되었습니다.
내용 중에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부정적인 사람들의 생활상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용이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강청댁'이었습니다. 그녀는 잘생기고 인품도 뛰어난 용이와 살면서도 늘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그가 예전에 사귀었던 점쟁이 딸 '월선'이와 만난다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것이 없다 하더라도 원래부터 천성이 아주 부정적이고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이라 어떤 상황에서도 그걸 부정적으로 해석해 내는 능력이 아주 뛰어났습니다. 그 능력은 자신뿐만 아니라 남편까지도 괴롭고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용이의 둘째 부인이었던 '임이네'도 '강청댁' 못지않았습니다. 처음엔 좀 괜찮은 듯했으나 점점 돈만 밝히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돼 갔습니다. 거기다 자기 가족들에게 한탄과 욕설을 퍼부으니 함께 사는 건 정말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그렇게 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를 대우하지 않는 가족과 이웃들에게만 독설을 퍼부으니 참으로 할 말을 잊게 만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사람이 드라마뿐만 아니라 실제에도 존재한다는 겁니다. 실제 그런 사람과 같이 살거나 자주 만나야 하는 입장이라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그들이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좀 깨우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욕심을 내고 자기밖에 모르고 돈돈하면서 살면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이 드라마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최 참판 댁의 하녀 귀녀입니다.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최 참판의 마음을 얻어 소실이 된 다음 아들을 낳아주고 신분 상승을 해 보자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양반 최치수는 하녀 귀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얼씬도 못하게 합니다.
그러자 귀녀는 애를 태우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동네의 불량 양반 김평산이 귀녀를 도와주게 됩니다. 귀녀가 아들을 잘 낳는 칠성이와 동침을 하게 한 후 아기를 갖게 되면, 그 아이를 최치수의 아들이라고 속이면서 안방마님으로 들어앉으라는 겁니다. 김평산이 칠성이에게 말합니다. "일만 잘 되면 평사리 땅 절반은 자네 것이 될 것이여" 그 말에 혹한 칠성이는 김평산이 시키는 대로 귀녀와 동침을 몇 번이나 하게 되고, 귀녀는 실제로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김평산은 최치수를 죽여버리면 자신의 계획이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느 날 최치수가 자는 방에 몰래 들어가 그를 목졸라 죽이게 됩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동네에 미친 여자가 최치수가 자고 있던 방에 불까지 지릅니다.
이건 하늘이 돕는 거다고 생각한 김평산과 칠성이 귀녀는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귀녀는 최치수의 죽음 앞에 누구보다 더 슬피 울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최 참판 주인어른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을 건드려 임신을 하게 되었다며 더욱 슬피 웁니다. 모든 계획이 완벽히 성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치수의 어머니였던 마님(윤씨 부인)이 펄쩍 뛰면서 '네놈들이 범인이었구나' 하고 그들을 관가에 고발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최치수는 아이를 임신시킬 수 없는 몸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몰랐던 귀녀와 김평산 칠성이는 관가에 끌려가 모든 사실을 자백하고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분수를 넘어선 욕심을 낼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조준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치수가 죽자 친척이니 재산을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그 집에 들어와 재산을 다 빼앗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아내와도 관계가 안 좋아지고, 자신은 패가망신하게 됩니다.
여러 사람의 인생을 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행복이란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아픈 곳 없이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합니다.
이제는 토지 이야기가 나와도 누구랑 대화가 좀 될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토지에 나오는 명대사들을 옮기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운이라는 건 밖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지요. 운이 좋다는 건 사리가 분명하고 이치가 밝아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오. 운이 나쁘다는 건 판단력을 잃는 거요"
"내가 부끄러운 건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냐가 아니오. 내가 정말 부끄러운 건 과거가 아니라 지금이오"
"세상에 자기 부모를 택해 태어난 아이가 어디 있겠노?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노?"
"그렇게 원하던 복수를 했건만 내가 없구나. 너는 너 자신을 살아야 해. 네가 좋아하는 걸 찾아야 해. 너 자신을 찾으란 말이다. 너는 네 아버지의 망령을 평생 짊어지고 다니다가 네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냐? 김평산의 아들이 아닌 김거복으로 살아라. 너를 찾으란 말이다"
"사람대접이라 하는 거 남이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받는 거요. 내가 바르고 당당하면 그렇게 대접받고, 내가 삐뚤고 비굴하면 그만큼 받는 거요"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의 도리란, 자기 일 잘하고 처자식 아끼면서 반듯하게 살아주면 그게 자식의 도리다"
"아무도 원치 않는 생명으로 태어나 이만큼 살았으면 원 없이 살았다. 꿈속에서도 만나지 못할 사람. 이제 내가 만나러 가리다"
"괴로움이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불행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