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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숲 Aug 14. 2024

러브레터 1: 나는 행복한 사람?

행복하고 싶은 사람.

 “그럼 너는 한 번도 평범하게 행복했던 시절이 없어?”

친구는 잠시 고민해보더니 “없어”, “조금씩은 우울함이나 불안함이 깔려있었던 것 같아.”라고 대답했어. 어느 텁텁한 여름의 저녁, 친구와 나는 덜컹이는 지하철에서 사뭇 진지한 대화를 나눴어. 그때의 나는 친구의 우울함이 조금은 안쓰럽다는 듯이 “나는 그래도 행복했던 것 같아.” 라고 대답했어.      


 어두컴컴한 곳을 달리며 커다란 진동을 반복하는 지하철 차체와 같은 삶 속이라도 나는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며 머쓱한 고백을 했지. 그런데 그 순간에는 나름의 확신을 하고 내뱉은 말도 언제까지나 진실로 여겨지지는 않잖아. 그 대답이 과연 사실인가에 대해 이제 와서 의심이 들어. 실은 나도 갈피를 못 잡고 조금씩 기우뚱하는 마음 위에 삶을 올려다 놓은 채 살아온 것 같아.      


 지하철에서 내가 먼저 내린 후 친구는 나와의 대화를 곱씹어 봤을까? 아아 나는 역시나 불행한 편에 속하는가. 라고 생각해버렸으면 어쩌지. 역시 다음에 만날 땐 말해줘야겠어. 실은 나도 조금 우울하고 불안해. 그러니까 우리 약속했던 활쏘기도 해보면서 울적함을 달래보자. 그때는 나도 엄청나게 찡찡거리고 투덜거릴 거야.


 너는 어때? 너는 행복이 익숙한 편이야? 인생은 기본적으로 고통이 아닌 행복인 것 같아? 요새 나는 힘든 일이 많아서 그런지 인생은 고통이 밑받침이다. 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었거든. 아까 잠시 sns를 봤는데, 예능 프로그램 멤버들이 대장내시경을 받는 영상이 재미있다며 뜨더라고. 근데 나는 그걸 보며 웃기기는커녕 나이가 들면 주기적으로 대장내시경도 받아야 하는구나. 역시 인생은 고통이야. 나이를 먹을수록 고통의 레벨이 더 높아지겠지? 고통의 보스는 아직 만나지도 못한 걸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당장 이번 겨울만 하더라도 내겐 매복 사랑니 뽑기 미션이 기다리고 있어. 그런데 또 집을 나서자마자 하늘의 구름이 벌써 가을의 모양인 거야. 금세 기분이 좋아지더라고. 어쩌면 나는 그냥 불행도 행복도 쉽게 흡수해버리는 스펀지 같은 감정 구조를 가지고 있나 봐. 너는 요새 어떤 감정을 주로 느끼고 있어?


 나에게 행복은 당연하게 존재한다고 믿어 왔기 때문에 그동안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편이 아니었어. 공기는, 물은 무슨 맛일까. 라고 생각하진 않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데 이제부터 진지하게 행복에 대해 고찰해볼까 싶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떨 때 행복한지. 행복이란 뭘까?에 대해 돋보기를 들어볼까 해. 그러니 너도 망원경이든 핀셋이든 들고 와서 나와 같이 행복이 뭔지 탐구해볼래? 꽤 괜찮은 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를 품고, 오늘의 편지는 여기서 마칠게.


일본 나라의 어느 사슴, 23. 2. 8.

(짜증날 때 사슴의 대처 방법이 제일 현명할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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