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랑 다르게 살지 못하는 건 동물이 아닌 사람들
건강검진 후 결과 상담 때 다시 한번 더 심장
초음파를 했다. 어제 결과를 알려주신 분의
말은 차마 여기에 바로 옮기지는 못하겠다.
정적인 생활을 좋아하지만 오늘부터 밖에 나가
부지런히 걷기로 마음먹었다.
이사 온 후 처음으로 혼자 집을 나섰다. 눈이
녹지 않은 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빙판길은
미끄러지지 않으려 길가에 난 풀 위로 조심히
걷고 또 걸었다. 화산 2리는 이미 차를 타고는
몇 번 왔었지만 걸어서 와보긴 처음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차에서 스치듯 지나는 풍경과
걸으면서 살펴보는 풍경은 많이 다르다.
길거리 집 안쪽의 골목을 따라서도 여러 채의
가옥들이 자리하고 있다. 외형이 아름답고 정원
과 담이 세련된 집들이 간혹 있고 생김새가
같은 농가주택과 농기구로 가득 찬 창고 달린
집들도 몇 채 있다. 군데군데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아 초라하게 사그라들고 있는 빈 집도
있다. 집과 뜰은 사람이 함께하지 않는 순간
부터 생명을 잃고 쓰러져 간다. 많은 집들을
지났고 골목도 헤맸고 다시 버스가 다니는 길
까지 나왔지만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추운 날
나 혼자 털모자까지 쓰고 낯선 동네를 휘젓고
다닌 거였다.
동네분들은 만나지 못했지만 집집마다 이방인
을 향해 짖어대는 개들은 많았다. 하나같이
백구다. 다들 친인척인지 화산 1리와 2리의
개들이 생김새와 색깔이 같은 게 희한하다.
서울서 산책할 때 보았던 개들은 사람들만큼
이나 참 다양했는데. 개와 기르는 사람은 성격
과 분위기가 많이 닮았다. 처음엔 개가 주인을
많이 닮았구나 싶었다. 실제로 개에게 엄마
아빠가 어쩌고... 그러는 걸 보면 그 느낌이
더욱 강했었다. 하지만 재미있는 연구발표를
보고는 웃을 수밖에 없었는데 '실제로 사람이
자신이 기르는 개를 닮는다'라는 것이다.
동물이 다른 동물을 따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개도 고양이도 소도 말도 다 자기식대로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며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
하지만 동물계에서 유일하게 인간들만이 타인
의 패션, 말투, 걸음걸이, 표정, 화장, 심지어
사는 방식까지 흉내 내지 않는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부자연스러움이다.
도로만 걷기엔 재미가 떨어져 느닷없이 눈이
녹지 않은 남의 밭으로 들어가 봤다. 풍경들이
발걸음에 따라 달라 보인다. 산은 언제나 저기
거기 여기 있지만 바라보는 내가 어디에 있는
가에 따라 얼마나 다른 모습이던지! 한자리에
서서 바라본 것만으로 다 본 것인 양 다 아는
것인 양 하는 위험하고 모호한 정의는 갖지
말아야지 싶은 산책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