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함, 단촐함으로의 행로
어제 오후 5시! 일찌감치 아이들에게 굿나잇
메세지를 보냈다. 무슨 일이냐고 큰 아이에게서
답장이 왔다. 퇴근 후 통화를 하고 싶다는 말에
처음으로 음성통화 기능을 눌러 아주 사실적인
가라앉은 나의 목소리를 보냈다. 몹시 피곤하여
일찍 잠들거라고..................
낮에 '원적사'엘 갔었다. 절 이름 외에 다른 정보가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마을을 벗어난 곳에 차를
세워두고 걷기 시작했다. 초입부터 도로가 다르긴
했다. 미끄럼 방지를 위한 요철 라인을 섬세하게
그어 놓았다. 추운 지역이라 빙판길에 대한 대비
하기 위한거라 짐작했다.
헌데 그 시작점부터 대여섯 걸음을 걷고는 심장이
쿵쾅대고 숨이 가빴다. 걷다보면 저만치에 절 터
가 보이겠거니 ~ 하지만 가도가도 보이지 않았고
코너 코너에 차 한 두대 주차되어 있었다. 더 이상
차를 몰고 가서는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올 수
없어서 그랬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승용차 보다는
4륜구동 차가 좀 더 위에 주차된 걸로 봐서 세찬
뒷 힘이 필요한듯 했다.
오르다 손바닥으로 짚으면 길에 손이 닿을듯한
가파름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와중에도
꿀밤 나무와 키 큰 소나무의 병풍사이로 나는 산신
이 되어 걷고 있는 느낌을 만끽했다. 결국 이른 곳
에는 차가 한대도 없었고 높디높은 돌담만 요새
처럼 정갈하게 쌓여 있었다. 주차장까지 왔지만
절은 보이지 않았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라
고 되어있다. 그분이 여기에 터를 잡으셨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 했을거다.
돌계단을 성큰성큼 올라가서 본것이라곤 낮은
지붕의 본채 하나 옆에 달린 생활실 그리고 기역자
공부방이었다. 절 마당에는 야생화인 소국이 마른
것 외에 일부러 심고 가꾼 꽃 한포기가 없었다.
건물을 비켜난 곳에 소나무 몇 그루는 수형과 크기
가 작고 평범했다. 건물을 비켜난 마당 한켠엔
작은 배추밭 그 옆에는 비어있는 빨랫대 하나.
지붕은 초록에 회색을 입힌 기와였다. 일반 사찰
이나 고궁에 입혀진 화려함과는 사뭇 다른 단층은
명도와 채도를 낮아 차분하고 은은했다. 눈을
밟으며 작은 절터를 몇걸음 걷다보니 보여지는
공간에 마음이 화~악 열렸다.
최소한의 필요한 것들만 있었고, 모든것이 들뜸
과는 거리가 먼 초연함이었다. 공간은 그 속에
들어가면 단번에 읽혀지고 느껴지는 그 무엇이다.
나는 누군가의 집 혹은 사무실에 가서 몇분 내에
그 사람의 히(his)스토리와 허(her)스토리가
읽혀지던 경험이 많았다. 가끔은 허세와 언벨런스
까지도!!!!, 이곳에서 내게 흘러든 것은 단촐함
으로 삶의 행로를 걸어가란 것이었다. 법당에
들어가거나 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
다. 도구가 없어 사진은 찍지 못했다. 대신 마음
으로 담아온 것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