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이 되고 사연이 담긴 아름다운 것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남겨진 집과 세간살이들. 그 중심에서 내가 허둥대던 시간이 있었다. 3남 2녀! 부모님께 자식은 많았지만 한국에서만 살았던 자식은 단 한 명. 나 역시 아니었다. 퇴직 후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 두 달이 채 되기 전 2013년 2월 엄마가 돌아가셨고, 만 일 년 뒤 2014년 2월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두 분의 임종을 지키던 시간, 동안 친정집 드나들 일이 더러 있었다.
큰 아이는 어릴 적 외갓집 거실 천장 등(샹델리아의 중앙에 매달린 동그란 공 같은)의 크리스털 잡기를 좋아했다. 가끔 키 큰 아빠에게 안겨 천정으로 힘껏 손을 뻗어 신기해하며 만지작거렸다. 이젠 대학원 졸업반이 되었다. 무언가를 가져오라는 나의 부탁을 받고 텅 빈 외할머니 댁을 갔던 아이가 사진을 보내왔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실의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나면 이 집에 언제 다시 오겠는가 싶었던지 외가댁 현관 앞에 세워진, 얇고 곧은 기둥을 끌어안은 그립고 아쉬운 안타까운 눈빛의 사진이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한국의 둘째 며느리에게 부모님의 집이 유산으로 주어졌다. 엄마의 물건들 중 좋은 것들은 오래전 아버지께서 수고 많았던 간병인들에게 다 나눠 주셨다고 한다. 아이는 할아버지 셔츠 몇 장과, 머플러를 가지겠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 외할아버지의 회색 머플러를 감싸고 추운 겨울 출근을 한다. 나는 누구도 가질 엄두를 내지 않는, 엄마가 시집올 때 가져오셨다던 장독 몇 개 과, 물시루, 그리고 재봉틀을 가졌다. 우리 집으로 옮겨온 장독들의 속은 모두 텅 비어있다. 장독대는 그리움의 공간이다. 항아리 두 개는 구멍을 뚫어 화분으로 사용 중이다.
부모가 남겨놓은 세간살이에서 내가 원했던 건 정작 비싼 작가의 작품인 나전 칠기장이나 가죽 소파, 새것과 다름없던 TV나 에어컨들이 아니었다. 부모의 흔적이 될만한 것은, 그분들이 걸쳤고 사연이 담긴 것들이었다. 일 년 정도 자식들의 허전함 속에 빈 집으로 있던 그 집은 얼마 전 처분되어, 다른 분이 살고 있다고 들었다.
막내인 나와 첫눈에 마음에 들어, 평생을 아끼셨던 막내 사위와 나의 두 자식들을 반겨주시던 엄마와 아버지는 이제 마음속에만 남아있다. 장례식이 지나고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멀고 먼 나라에서 손자와 손녀들이 신소를 방문하고 있다. 그들 각자의 추억과 기억을 알 수 없다.
당신은 부모의 무엇을 갖고 싶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