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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깨지거나, 쓰러지거나

나무가 흔들렸을 때 바로 잡지 않으면? /나무가 터져버리면?

by 이경희


[며칠간의 나무 이야기]


상주로 갔다. 나무를 심었던 이틀 후 비바람이

몰아쳤고 심어 놓았던 나무 반 이상이 흔들렸거나

뿌리째 쓰러졌다. 몇 번의 나무 심기를 시작한

이래 이런 낭패는 처음이다. 어린 나무에 지지목

을 세우는 건 무리여서 편백은 잎을 쳐내 몸체를

가볍게 한 뒤 다시 심었다. 단풍나무와 느티나무

산수유는 흔들거리던 키를 반으로 잘랐고 잎도

정리했다. 오늘은 장기적인 나무 관리를 위해

멀칭을 계획한 날이다.



부분적인 멀칭은 풀 잡기도 어렵고 나무 심은

곳의 거리가 집에서 먼 이유로 한 번에 몇 년간

효과를 볼 수 있는 멀칭 재료를 쓰기로 했다.

결국 모든 일은 J의 몫이다. 나는 호미와 전지

가위를 들고 장화에 모자까지 갖춰서 일 좀

잘하게 보이지만 내실 없는'폼생폼사'다.

이런 내게 눈에 띈 게 있었으니 밭 둑 구석진

자리에 자라고 있던 두릅과 엄나무 그리고

가죽나무였다.


기뻐하며 무념무상으로 예쁜 순들을 또각또각

따고 있었는데 갑자기 노인 한분이 낫을 들고

허겁지겁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그는 나의 인사에 어떤 대꾸도 않았다. 숨을 몰아

쉬며 내가 따다만 나무 가지를 낫으로 휙휙 낚아

채며 두릅순을 순식간에 몽땅 다 따버렸다. 낫을

보니 공포스러웠고 그분의 행동에 당황한 나는

"어르신! 이것도 따가세요" 라며 잠시 물러섰다.


그동안 남의 땅에서 거저 얻었던 수확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저리도 마지막까지 노욕을 부려서야~



그 날의 비와 바람은 3~4일 전의 초강력 강풍에

비하면 부드러웠다. 이번엔 집 안의 수양벚꽃

나무가 지지대를 허물고 뿌리째 뽑혀버렸다. 산에

심어둔 잣나무도 벌써 두어 번 쓰러진 게 있다.

울타리 목으로 심긴 2m 남짓한 키의 편백나무

몇 그루도 쓰러졌다. 이럴 때 묘수는 없고 단지

방법만 있을 뿐이다. 쓰러진 나무는 빨리 일으켜

세우고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가지

치기와 지지대를 더 튼튼하게 지탱시켜 주는 것

이다. 무엇보다도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음'을 알고, 뿌리가 잘 내리도록 보살

피며 마음을 느긋하게 갖는 게 아닐지?



기존의 땅에서 옮길 수밖에 없었던 감나무 두

그루 중 한 그루와 아름다운 수형을 가져 첫눈에

반해 구입했던 큰 배롱나무는 문경의 매운 추위에

나무둥치가 깨졌다. 정성스럽게 심었고, 지지대를

받쳐 주었으며, 뿌리 쪽은 짚으로 두툼하게 덮어

주었고, 보온을 위해 뿌리 쪽에서 가지 중간까지

정원용 밴드로 다 감아주었건만 나무는 견디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최선을 다한 일들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던 적이 얼마나 다반사였던가? 무르익은

봄의 마지막까지 싹이 돋아나지 않는 나무를 어루

만져 본다. 엄동설한에 따뜻한 집 안에서 내가

희희낙락하는 동안 나무는 견디다 못해 얼고

터지고 금이 갔었던 거다. 잘 살펴보지도 않고

봄이 왔는데 "왜 이렇게 잎이 나지 않느냐?"라고

물이 오르는지를 확인한다며 가지 끝자락만

똑똑 부러뜨리고 있었으니...


사람인 우리의 최선이 그들을 다 지켜줄 순

없었다. 뭔가 나무에게 더 절실한 + Alpha를

찾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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