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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May 11. 2016

폭풍에 꺾여  생일상의 꽃이 되어준 모란

5월


 생일날 만큼이나 죽는 날도 중요하다는 친구가 있었다. 지금 R(류)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일주일 전 아침 산책 중에 나는 고 키 작은 밤색 가지 끝에 분홍빛 꽃봉오리 두 개를 매달고 흙 위에 곤두 박한 모란을 보았다. 내 마음 금세 실망으로 변했는데. 폭풍에 나무들이 쓰러지고, 지지목이 풀어져, 마음을 온통 거기에 쏟느라 정원 일은 잊고 있었던 밤! 거센 바람은 모란 가지 가차 없이 부러뜨린 거다.



 작년 늦가을 과천에서 모란 묘목을 샀었다. 꽃이 피면 이렇게 될 거라는 사진 하나가  튀김 젓가락처럼 생긴 나뭇가지에 이름표처럼 붙어 있었다. "이렇게만 피어나 준다면 한번 심어볼만 하지 않아?" 엄청난 기대를 안고 집으로 데려왔다. 초겨울엔 짚으로 나무를 싸고 겨울이 깊어질수록 낙엽 겹겹이  덮어주었다. 봄날의 모란은 잎만

으로도 귀한 기품을 자아냈다.

~

봉오리가 올라왔어!~

그것도 잠시 푹푹 부풀어 올라 봉오리가 탁구공 해졌던 날  꺾여버린 것이다. 


 부러진 가지는 흙을 털어내고  낡은 물담가 두었다. 이튿날 보니 상태가 좋지 않다. 수관으로 이동되어야 할 물에 이상이 생긴 듯하다. 살펴보니 작고 가는 목질이 된 가지에서  순이 나면서 무거운 봉오리지탱하기 어려웠던 게 원인이었다.

 

 딱딱한 목질에서 봉오리가 붙어있는 새 가지를 분리 뒤 날마 물을 바꿔주니  상상했던 꽃이 피어났다. 아련하부드러우며 황홀하고 귀한 느낌의 완성을 보여주었다. 나물 몇 가지와 과일, 미역국이 전부였던 소박한 생일상과,  그 후  커피 내리던 자리까지 옮겨가며 했던 모란의 역할은 조용한 분위기 메이커였다.


                  둘째 G.Y이 찍어준 사진


  작년부터 정원을 시작했고,  방문한 사람이 꽃을 좋아하거나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면 서너 가지를 어주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길고 긴 시간 동안 들인 정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꽃은 피어난 그 자리에서 때가 되면 지는 것이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했고 온 가족이 모였던 시간을 은은하게. 받쳐

주었던  모란이 오늘은 지려한다. 꽃잎은 갈무리했고 씨방은 햇볕에 두었다.



 한국! 서울로 돌아와 함께 지냈던 시간 동안, 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내게 꽃을 사다 주었다. 때론 송이, 어떤 날은 다발로! 아파트 창가에 두고 바라보며  위로도 받고 기쁨이 컸던 시간이었다. 정원을 시작한 엄마로 인해 아이들은 더 이상 꽃을 선물하지 않는다. 꽃을 좋아하는 외할머니를 닮은 엄마와 꽃을 좋아하는 엄마를 닮은 두 딸과의 인연이 새삼스럽다. 이번 생일엔 한송이 꽃도 나를 위해서는 꺾기 어려운 마음을 알고 바람이 그리 장난을 쳐 놓치는 않았을지?


 화병 속에서 충분히 만개했던 모란은 지금부터 햇볕 속에서 씨앗을  익힐 수 있을까? Dear. Ryu! 너의 말처럼   잘 지는 것도 중요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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