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을 피해 숨어든 단풍나무 아래에서 만난 꿀벌
분홍 코끼리 물조리개! 눈망울 반짝이던
스티커는 이미 사라졌지만 이젠 모종판에 물을
주는 진짜 코끼리 코가 되었다.(다 자라 어른이
된 아이의 이름은 희미하게 지워져가고 있다.)
오전에 만난 사람들의 옷차림새는 제각각이었다.
나는 검은색 히트텍에 카디건을, 남편은 가을
초입에나 어울릴듯한 울 섞인 브이넥 스웨트를
입고 시내에 갔었다. 우리와 함께한 다른 사람들
은 반소매를 입은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대체 왜 더운 날씨에 이렇게 껴입고 다니
는 가를 물어보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긴 했지만
썬글레스 없이 햇빛 속을 다녀서인지 눈이 피곤
하고 아리다.
"오늘은 바깥일 더 못하겠어" (혼잣말이다)!"
밤에 수업까지 있는 날은 컨디션 조절을 잘해야
한다. 두어 시간의 여유로움에 오랜만에 두 작가
의 글 몇 개를 읽는다. 개인의 생활 속 발견이
흥미롭다.
혼자서 한참을 놀고 나니 다시 기운이 난다. 데크
위 모종판과 핑크 코끼리를 지나 단풍나무 아래로
훅 들어가 봤다. 나른하기 그지없는 시간 언덕편
에서 일하고 있는 J가 보인다. 청단풍 아래로도
햇빛 한 줄기가 확 쏟아진다. 단풍나무 아래서
꿀벌을 만났다. 나처럼 햇빛을 피해 이리 숨어
들리는 없을 텐데 뭐 하는 거람! 살펴보니 벌은
단풍나무 꽃에서 꿀을 따고 있다. 무성한 잎 속
에 작은 방울만한 꽃들이 조롱조롱하다.
피곤함을 잊고서 나무를 살펴보니 차이는 있었
지만 빨강 꽃들이 가지마다 달려있다. 벌과, 곤충
개미들은 나 이전에 단풍꽃에서 자기네들의
일을 이미 보고 있었다. 배가 불룩해진 놈이
날아가면 다른 일 벌들이 날아오는 구조랄까?
팀플레이가 완벽하다. 시원한 그늘과 연두색은
나에게 금방 기운을 주었는데. 자갈 깔린 땅
곳곳에는 아기단풍들이 자라고 있다.
"오늘 정원 일은 도저히 더 이상 못한다"던 나
혼자만의 선언은 뒤로한 채 물에 담가뒀던 흰
종지나물, 제비꽃, 분홍꽃을 피우는 무명 1,
잎이 예쁜 무명 2를 기꺼이 다 심었다. 저녁에는
약돌돼지고기로 만든 장조림에다 김 대표네가
가져다준 울릉도 명이 나물에 싸서 먹고는 밤
공부를 위한 길을 떠났다.
나는 여전히 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