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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야! 미안

1 Minute 레슨

by 이경희


다 마신 커피잔을 주머니에 넣고 아침 산책중

었다. 심하게 굽은 허리만으로도 한 눈에 알

볼 수 있는 배(성) 어르신. 속이 따뜻해지는

반가움에 계곡 건너편에서 서로 안부를 물었

다. 4월 내내 그녀는 들판에서 일꾼들을 호령

하며 농사일을 하셨다. 한 이틀 보이지 않더니

동해안 여행을 다녀오셨다고 한다.


농한기에는 외국 여행도 다니신다. 그녀의 허리

는 멀리서 보기만해도 안쓰러워 뭐라도 도와드

리고 싶다. 서로를 알지 못했을 땐 꼬부랑 할머

니라고만 생각했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이

라면 밖에 나오지 못하고 칩거할 정도로 심한

상태다. "그녀 역시 어찌 그 시간을 보내지 않

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주변 시선에 게의치

않고 사계절 큰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다.



그녀의 주 작목은 담배와 배추 그리고 약용작물

이다. 우리 집을 방문한 그녀와 초 봄에 두어번

차를 마셔본 바로는 말 수가 많지않고 불필요한

인사치레는 하지 않는 담백한 사람이었다. 다만

지나치듯 말한 나의 궁금증이나, 내가 흥미를

였던 부분에 대하여는 정확한 타이밍에 잠시 와

일러주고는 홀연히 떠나버리는 바람같은 존재

다.


테이블에 마주앉아 넓은 창모자를 벗은 그녀의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너무 놀랐다.젊디

젊은데다 얼굴의 고운 선 피부 때문이었다.

그녀는 노인이 아니었고, 개인적인 아픔을 극복

한 자신감 있는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아우라

를 갖고 있었다.



오늘 그녀는 엄청 바빠 보였다. 윗 마을 농지에

놉이(농사일을 돕는 일꾼들)도착하기 전 준비해

놓아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우리 집에 잠시 들

렀다 가시라고 했지만 어느새 눈 앞에서 사라진

그녀!- "하여간 이 곳 사람들과 나는 제대로된

의사 소통이 힘들어" 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순간 사라졌던 그녀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3월 어느날 나와 다래순 이야기를 하다가 산나

물에 대하여 백지상태이며 여러가지 궁금해 하

던걸 기억하시고는 지금 이맘 때 한창인 다래

가지 하나를 어디가서 뚝 분질러 가져오신거였

다. 산촌새댁에게 실물을 알려주기 위해!



바쁘다며 물 한잔도 거절하고 잠시 우리집 텃밭

휙 둘러보시더니 약 1분동안 기막힌 텃밭 가

꾸기 레슨을 시작했다. 1.약용 식물 -'백출'은 7

~8개 남기고 다 솎아내야 실한 뿌리를 얻을

수 있으며/ 2. 멀칭한 비닐이 식물에 닫으면 상

하거나 뜨거워 탈 수 있으니 멀칭 공간을 넓혀주

고/ 3. 우리가 심어놓은 고구마는 간격이 넓으

니 중간에 한 줄 더 심어도 충분하며 /4.생강은

싹이 어느정도 자랄때까지 볏짚이나 낙옆으로

덮어주어야 싹이 마르지않고 잘 생장한다는것

/5. 우리가 심어둔 감자에 잎이 오그라드는 병

이 들면 인근의 담배 농사는 다 끝난거라 하셨

다( 전염성으로 인해 순식간에 주변이 초토화된

다는 것)


-이웃들이 생업으로 짓는 농사에 우리집의 텃

밭 감자가 전염성 해를 끼칠수도 있다는 것에

놀랐고, 잠시도 지체할 수 없어 뿌리째 뽑아 버

렸다. 그러는 우리부부가 안쓰러우셨는지 잠시

말씀이 없으셨다.



작은 콩만한 것에서 부터 메추리 만한 감자를

메단 뽑혀진 줄기는 햇볕 속에서 너무나도 싱그

러웠다. 우리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한 앞으로 감

자를 기를 일은 없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 컸지만

감자는 햇볕에 마르도록 버려두었다. 아이

이고~ 북을 돋워주면 감자가 더 실해지고 많이

열린다며 정성을 쏱던 남편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프다.


[그녀의 허리는 어느날 집 근처 나무에

톱질을 하다 예상과는 달리 큰나무가 사람

쪽으로 쓰러지면서 당한 사고라고 한다.]


2019 부터 우리는 다시 감자를 심기 시작했다.

담배밭 사이에서 대량으로 감자재배를 시작

하는것으로 무슨 방책을 세웠겠거니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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