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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Jul 05. 2016

장맛비 속에서는... 낮게 더 낮게!

함께 흐르지 않으면 뽑혀버릴 갈대


장맛비가 밤새 내린  아침이다. 집 근처를 둘러

보자는 J와 함께 뜨거운 커피 한잔을 들고 대문을

열었다. 집 주위를 휘돌아가는 계곡 물소리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말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우렁다. 대문 앞다리에서 왼쪽을 바라보니  

와~ 계곡물은 온 들판의 흙을 다 쓸어내린 듯

황토빛깔이다.



대문 밖 오른쪽 풍경은 더 무시무시하다. 지난

여름 방문객들이 심심해지면 아래로 내려가

다슬기를 잡거나 헤엄치던 물고기를 보던 곳

이었다. 나는 어제까지도 피곤할 때이곳에 

서서 고기들이 몇 마리나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곤 했던 곳이다. 이런 물살이라면 다슬기와

송사리들은 다 쓸려 어디로 떠밀려간 게 분명

다.


도로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 보니  둔탁한 소리가

요란다. 거센 물살에 돌과 바위들이 물에 쓸려

내려오며 부딪히는 소리라고 한다. 지난여름

두어 번 맑고 얕은 이 길을 슬리퍼를 신고 건넜던

기억이 있는데 이렇듯 달라졌다.



가끔은 물속에서, 때로는 드러난 땅에서 자라던

나무도 물살에 휘청이고 있다. 둥둥 떠있는 것은

갈대의 끝자락인데 바람에 눕는 풀잎의 자세

훨씬 넘어섰다. 물살에 몸을 맡긴 채 축 늘어져 

뿌리에서 뜯겨 나가지 않기만 바라는 걸까?

갈대의 안간힘이 느껴져 장마가 끝나면 다시

자리에서 풍성한 초록으로 설 수 있기를 바랐다.


나무 울타리 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가면 일 년 내내

느린 유속을 고수하던 맑은 계곡이었고, 수박을

끈에 묶어 매달아 두던  한적한 웅덩이였다.

여름에도 시리고 맑던 물 대신  흙탕물 투성다.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사온지 일 년 되는 달이다.

그동안 집 못지않게 주변 제방시설에  많은 애를

썼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튼튼하게 방비가 된

수로 속으로 쏟아지는 물은 작은 폭포를 이루고

있다. 늦봄까지 자연재해를 대비하여  수로에 

쌓였던 퇴적물들과 나무 둥치 등을 청소한 보람이

있다. 물은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수로 속을

초스피드로 달린다.



배수의 최적화를 위해 땅 속에 설비를 하고,

주변의 위험물들을 옮기고, 흙을 돋우거나

낮추고 다시 손보기를 꾸준히 하던  J의 '유비

무한' 덕을 톡톡히 는 장마철 시작이다. 

정오엔 대형 포클레인이 트럭에 실려 윗마을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일 없기를 바란다.



변을 말없이 둘러보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무섭지 않냐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장마가 끝나고 나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제대로 알게 되겠지? 밤이면 불을

켜고 요정처럼 날아다니는 반딧불이가 다시

찾아올지 궁금하다.


자두와 살구.... 건재하다

레몬밤과 파슬리는 다행이다

족두리꽃과 봉숭아 산수국 기린 꽃 베고니아도

키를 낮게 미리 손질한 덕분에 꼿꼿하다

담쟁이 아기 맥문동 돌단풍 나팔꽃 목수국 털 중

나리 세덤  초설 (마삭줄) 중에서 키 큰 나리꽃은

위험하다. 키를 낮추되 꽃 피우는 쪽으로 손질

했었는데...

웃자란 백일홍과 코스모스는 이곳저곳에서

푹푹 쓰러지거나 부러져있다. 가지 끝에 노란색

공을 무수히 매달고 있던 옐로볼은 비와 자신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과감히 잘랐다

음지 정원의 부처손과 넉줄고사리 바위채송화는

아주 제철이다. 눅눅한 것만 해도 좋을 텐데 한동안

끝없이 비가 내릴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해바라기와 하늘말나리 강아지풀 루피너스

원추리 달리아는 비 무게에 점점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어떻게 집중 폭우에 꽃잎을

다치지 않고 이들은 이렇게 건재할까? 사람이 

밤새 폭우 속에 있었다면 몰골이 말이 아닐 텐데.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하다" 하였던가? 폭우 속의 거미는 가는 풀

줄기를 기둥 삼아 천하무적의 거미줄을 쳐놓았다.

갑자기 웃음이 난다. 잠시 잠깐 햇볕이 나면서

계곡물은 줄어들었다. 흙탕물은 좀 시퍼레졌다. 

내 키보다 훨씬 더 컸던 갈대는  뿌리가 뽑히지

않은 채  바닥에서 물 흐름에 맞춰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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