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희 Jul 18. 2016

남편의 생일에 쓰는 글

같은 날/ 두 사람의 다른 일기


 오늘! 당신이 태어난 날이에요. 자정에 깨워 노래를 불러주는 대신 이렇게 글로 마음을 전합니다. 음식 준비를 할 수 없을 만큼 아파오던 허리는 가지나물-호박, 가지, 무, 숙주 준비하는 동안 완전히 잊혔어요. 열매와 뿌리채소는 다듬는 과정이 단순해서 좋아요.


 육식을 하지 않는 큰 애를 생각해서 고른 전복 쇠고기나 황태만큼이나 미역과  어울리는 재료여서 새로운 미역국을 만들 수 있었네요. 여름에 태어나 그런지 사시사철 수박을 좋아하는 당신을 위해 이번에 단골 과일가게를 만든 것도 생일상을 준비하며 만든 좋은 인연이에요.


 전에는 사람 손으로 일일이 떡에다 무늬 목판 도장을 찍었던 게 편이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불리고 가루를 빻아 쪄내는 시간 기다릴 필요 없이 주문한 뒤 약속한 시간에 찾으러만 가면 되어 놀랐어요. 맞춤생각할수록 어렵게 느껴져 만들어 놓은 것을 사거나

명절 때 어머니께서 주문해 놓은 걸 찾으러 가는 정도에 쳤었는데.


 함께 떡집에 원하는 바를 주문해보니 너무 쉬워 얼떨떨했지요? 한입 크기로 줄무늬를 넣어 납작하게 만든 백미 절편 낱개로 름까지 발라서 박스 포장을 해두었었잖아요? 편리함과 케이크만큼이나 다양한 모양의 떡은 정말 신기했어요. 특히 땅콩과 곶감 대추  라벤더 등을 넣은 모두 배기는 영양만점이라 주문하고 싶어요.


 찾아온  절편을 펼쳐두고 서울에서 방금 도착한 아이들과 떡갈비를 싸서 먹었던 떡쌈 어땠어요? 몰캉한 절편을 야생꿀에 찍어서 먹는 맛도 새로웠죠? 생일엔 너 나 없이 케이크만을 준비하는 건 좀  아쉬운 부분이에요. 앞으로 무한 적용이 가능한 떡의 세계를 탐험해 볼 거예요.


 맵쌀반 찹쌀반의 밥에 콩을 놓으면 자주색으로 물든 생일상 밥이 되잖아요? 조기 굽기  하기는 내일 아침 먼저 일어날 당신이 해놓겠지요? 결혼 후 몇 년간은 참으로 당신 존재가 감사하여 당신의 생일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우러나 어머님께 옷을 사서 보내리다가 어느 시기부터는 불만이 많아지고 지쳤어요. 99만 원으로 시작된 생활의 시작-경제적 기반을 만드느라 무리한 노력으로 서로 지쳐갔고, 생활무덤덤함과 권태감에서 한동안 엄청 헤맸어요. 혼자만!


 혼자 캐나다로 떠나버렸고, 훗날 아파트 이웃으로 살던 친구의 말을 전해 들었어요. 당신이 퇴근 후 날마다 인근 학교 운동장을 땀 흘리며 달리더라는 ! 나 역시 밴쿠버에서 엄청 외로웠고 공부도 참 힘들더구먼요. 무엇보다 떠나보니 당신이 그립고 고마웠던 일만 생각났고'Only You'들으며 생각이 절절했어요. 계획했던 공부가 끝나던 날 다들 여행  하며 보내야 하지 않겠냐며 부추겼지만   하루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비행기를 탔어요. 꽃다발들고 공항에서 나를 환대하며 맞아 당신

덕분에 삶의 회의와 고민 변덕과 권태감 그 후 완전히 멀어져 갔어요.


 한 사람이 헌신적인 마음으로 가족을 대할 때 일당백의 역할을 할  수 있음도 당신을 통해 알았어요. 품속에 안고 우던 두 아이는 이제 당신을 롤모델 삼아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어요. 엇갈린 의견들과 관계의 스트레스도 있을 법하건만 무엇이든 할만하고 재미있다며. 많이 배우고 지낸다는 언급들을 들을 때면 당신의 넉넉한 품성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진 것 같아요. 고마운 당신의 생일을 축하해요!


아랫글은 서로 이웃인 아이의  블로그 글이다.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아이가 바라본 엄마 아빠의 모습!




 아이의 글을 스크린숏 하여 옮기다 보니, 쓰고는 두 번 다시 읽어보지 않는지 철자가 두어 군데 이상하다. 한국

을 떠나 있던 초기 몇 년간은 아이들이 한국어를 연령에 맞게 쓰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며 날마다 이메일을 썼다. 의도적으로 그날그날 익히게 하고 싶은  한글을 따로 적어두고 그 단어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갔던

기억이 새롭다.



매거진의 이전글 '먹고, 마시고, 놀기'-의 가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