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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Aug 02. 2016

휴가철의 집밥 퍼레이드

3박 4일의 생일잔치/편지 서랍


 서울에서 올 아이를 기다리며 '편지 서랍'을 다. 오랫동안 만나서 헤어질 때, 혹은 중요 날! 마음을 다해 서로에 대한 느낌을  주고받았던 편지들이 쌓여다. 표현큼의 친밀함과 믿음이 쌓였음서로가 서로에게

독립한 지금에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오늘은 아이에게 '생일 축하' 글을 쓰려고 꽃이 피어난 엽서를 꺼냈다.


[받은 편지와 앞으로 쓸 편지지와 엽서들 함]


 아이가 어릴 적 어떻게 나에게로 왔는지 가끔 물었었다. 정말이지 '엄마와 자식과의 인연'이 궁금했고, 세상에 완전히 적응하여 그 이전기억을 잊기 전에 확인하고 싶었다.-그러면 아이는 반드시 제 언니를 끌어들여 -"하늘에서 보니까 엄마 아빠가 결혼을 했더라고요. 언니와 눈을 찡긋하며 이 분들께로 가자며 금줄을 타고 내려왔죠!"라고 했다.


[생일 떡은 아이의 새하얀 피부빛을 닮았다] 


 가족의 생일에 떡을 하기는 내 생애 두 번째다. 2주 전 남편의 생일에 이어  8월 1일인 둘째의 생일날이 그 기록이다. 떡 상자를 열자 식구들은 감개무량해했는데,  큭큭거리며 웃기도 하고, 와와 그리며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될지를 기대하며 막내의 생일 파티를 무려 3박 4일에 걸쳐

하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된 한여름 생일파티는 7월 29일 늦은 밤에 시작하여 오늘 끝났다. 



 엄마 아빠가 직접 기른 수박과 참외  옥수수를 아이의 생일에 맞춰 첫 수확했다. 토마토 고춧잎 깻잎나물도 텃밭에서 수확한 거다. 고추잡채에 아이는 감동의 마음을 거침없이 표현하며 즐거워했다.



 일하며 사는 생활에서 집 밥 해 먹기가 쉽지 않았던지 아이들은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너무 좋아했다. 퇴직 후 나는 뒤늦게 요리를 배웠다. 수업은 그런대로 따라갔지만 손에 익지 않아 그런지 기억에 남은 게 없다.  다만 레시피 없이 매번 자유로운 메뉴를 만들어내는 특기를 갖게 되었다. 직접 담근 오이피클과 복분자 넣은 보라색 무김치를 넣은 김밥. -넓고 큰 도마에 한 번에 넉장의 김을 펴고 말아 내니 '대량생산'이라며 응원의 휘파람 소리와 함께 빨리 김밥의 꽁지를 먹게 달라는 열화를 부리며 식구들은 내 주변에서 부~산하다. 다들 부산사람 아니랄까 봐. 



 집 근처 산골 마트에서는 팔지 않던 열무를 시내에서 두 단 구입했다. 간 밤에 J에게 옥수수 삶는 카톡으로 보냈건만 딱딱하여 먹을 수가 없게 삶아 놓았다. 큰 칼로 쓱쓱 훑어낸 알들과 복분자 과육을 믹서기에 함께 갈았다. 분홍색 옥수수 열무김치 녹말 국물이 되었다. 텃밭의

홍고추와 마늘 생강에 소금을 넣어 간했다. 중면을 삶아 오디식초와 맑은 크림색 모과 진액으로 새콤달콤한 열무국수도 만들었다.



 주꾸미 콩나물 볶음과 치즈를 넣은 두툼한 계란말이! 국물에 나물과 부추를 넣어 볶음밥을 한 김에 싸서 먹기도 하고.



 마늘 장어구이와 초록, 적색 깻잎/ 텃밭의 박하 페퍼민트 바질 잎이다. 식사 후 곧바로 뜨거운 물에 녹여낸 허브차는 순도와 향기가 압권이다.



 J는 매번 우리의 까탈스러운 취향에 맞춰 심각 표정으로 각양각색의 커피를 만들어주었다. 토마토와 아로니에 주스는 건강을 위한 조합.


익어가는 포도


 작년에 수확하여 올해에 파종하고 남은 해바라기 씨앗. 다람쥐 두 마리는 날마다 포식한 흔적을  암석과 정자 마루에 남겼다. 최근엔 우리가 두두두 뱉어놓은 수박씨와 자두 살구 복숭아 씨앗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있다.


[통발의 물고기를 저장하는 fish bank] 


 "퇴직하면(If, 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이 정확한 표현) 함께 평화롭게 낚시를 하자"

 내가 남편에게 보낸 몇 년 전 엽서를 그제 찾았다. 당시에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일들이 많아 서로를 위로하느라 그런 말을 나누었지 싶다. 잊었던 글이었는데 작년에 터를 잡은 집 옆의 얕은 계곡에서  민물고기들이 잡히고 있다. 낚시가 아닌 통발을 넣어두는 것 만으로 밤새 물고기가 들어가 있는 신비로운 방식인데, 메기를 여러 마리 잡은  J는  맛난 추어탕을 만들었다. 오늘 아침산초가루와 방앗잎을 넣은 '부산식 추어탕'을 선보여 세 여자에게 갈채를 받았다. 물고에게 고맙기도 하지만 미안하기도 한다.


[백일홍(배롱나무 꽃)과 목수국/'동생의 생일에 나타난 하트 구름'이라는 G.E의 말!] 



 아이의  일과 회사생활, 만남과 앞날의 계획, 공부 등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동안  마리의 잠자리가 정자 난간에 앉아 있었다. "우리 이야기를 듣는 건가?" 


[나리꽃과 새 가지를 낸 단풍 그리고 꽃범의 꼬리] 


 낙엽 쌓인 언덕의 거름진 곳에 핀 풍성한 해바라기. 심긴 곳에 따라 50cm~ 3m의 키 차이가 난다.


[페튜니아와 씨앗을 깨소금처럼 쓸 수 있는 니겔라 ] 



 휴가를 떠나온 사람들이 찾아서 북적대는 숲과 계곡이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고요함과 산들바람이 불어 좋은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우리는 매끼 집밥을 해 먹으며 둘째의 긴 생일파티를 이어갔다. - 마루에 누워 책을 읽거나,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돌 위에 앉아 있거나, 시원한 수박과 참외, 달콤 새콤한 천도복숭아와 연두색 아오리

사과를 나눠 먹기도 하고, 느닷없이 디톡스를 하자며 뜨거운 허브차를 엄청 들이키고, 많은 시간 스마트폰에 빠져 서로를 잊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에는 낮잠도 자고, 시원해진 달밤에는 아빠의 구령에 맞춰 옛날식 국민체조도

했다.



 이제 보라색 꽃이 3분의 1쯤 피어난 넓은 원형의 맥문동 숲!-함께 나들이를 갔던 아이들은 집에서 마지막으로 '버섯 불고기'를 먹고 도시의 제자리로 돌아갔다.'마음에 파라다이스를 품고 떠난다' 했으니 폭염에도 잘하고 건강하게 지내기마음으로 기원한다. 이제 J와 나도 그간 미루어놓은 일들을 힘차게 해 나갈 수 있겠지? 하늘에 가을이 묻어오고 있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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