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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Sep 18. 2016

생색

생색을 내지 않음으로 내 마음에 감동으로 남게 된 남자


춥고 외진 깜깜한 도로였다. 나와 달리던 차는

균형 잃고 어딘가로 처박혔다. 아찔했고 뭐가

뭔지 모를 상황이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보험회사에 전화를 건다는 최소한의 

상식조차 나는 몰랐고 주변에는 공중전화도 

없었다.


엄청난 추위였으나 집에서 차를 타고 내려서

 하고 차를 타면 바로 히터를 틀었기에  외투

걸치고 있지 않았다. 모직 스커트 정장이

나의 옷 전부였다. 불빛이 없으니  더 막막했다.

내가 떨어진 곳은 신도시를 만든다고 공사가 

한창 중이던  논바닥이었다.


뿌연 안개 덩어리 같은 포장마차 한대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천막을 들추고 들어가 보니

공사 일 마친 다수의 남자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의 사정을 말하며 좀 도와줄 수 없는

지를 절절하게 물었지만 누구 하나 대꾸조차

없었다. 느낌좋지 않았고 공포감이 일었다.


잠시만 기다려보라는 말을 한건 포장마차 주인

이었다. 그는  카바이드 등 하나를 천막 밖으로

꺼내 주변을 힌 뒤 비상용 타이어를 트렁크

에서 빼내 교환해 주었다. -추운 논바닥에서 

얇은 옷차림으로-


 도로를 내면서 위험물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이런 사고가 종종 생긴다고 했다. 그날의

문제공사 후 흩어져 있던 못이 타이어박혀

펑크를 낸 거였다.


손님들에게 술을 팔고 안주를 만들어주며 매상

 올려야 할 시간에 생면부지의 낯선 여자

타이어를 갈아주던  그 사람 뒤에서  나는 이성

적인 계산을 하고 있었다. "감사하다며 말하고, 

얼마의 수고비 드리면 될까?" 마음으로 중얼

중얼 연습까지 했다. 하지만 지갑에는 현금이

없었다. 우선 가지 있던 상품권 몇 장을 인사

와 함께 건넸다.

"필요하여 가지고 계신 건데 저를 주면 어떡합

니까?"-그는 기어이 받지 않았다.


혼비백산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며칠 후 남편과 인사를 하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포장마차가 있었던 그 자리가 어디쯤

이었는지 분명히 기억했는데  흔적도 없었다.

그 지역 공사가 끝나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일까?

당황스럽고, 미안했다. "그는 누구였으며? 찾아

오지 않는 나를 원망했을까?" 그날 밤 젊은 포장

마차 주인의 지고한 배려를 나는 항상 기억하고

살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그의 행동은 작은 일

 생색내고 싶어 하는  나를  누르는 묵직한

돌이 되었다.



"남에게 베푼 보시에 집착하기보다 더

어려운 것은 남에게 입은 은혜를 기억

하는 것이다." -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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