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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Sep 17. 2016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엄마! 제가 백번 더 할머니를 뵐 수 있을까요?"


 남쪽으로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내비게이션은 나의 예상과는 달리 고속도로 대신 국도로 안내했다. 밤늦게 서울에서 도착한 두 아이는 새벽일어나 커피 한잔으로  정신을 깨운 뒤 방금 덮고 잔 이불처럼 자신들을 차에 실었다. 추석맞이 '부산행'이다.


 운전자를 제외한 세 식구는 충분하지 못했던 잠을 자거나 국도 풍경의 아름다움 동영상으로 찍었다. 오르막 도로 끝에서 붉은 태양이 부딪히 다가오던 모습에 나는 화들짝 다. 와~


 내비게이션 덕분에 평소보다 빨리 부산에 도착했다. 며칠 전까지 병원에 입원해 계셨던 어머님은 엄청난 양의 제수 거리를 사다 놓으셨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일을 척척 잘 해내면 좋겠지만 어머니께 나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하나를 썰어도 먼저 어머님이 시범을 보이셨고, 산적을 할 때는 막내동서를 은근히 기다렸고, 나물을 볶을 때는 오늘도 근무 중인 큰 동서를 말씀하셨다. 하지만 다들 사정이 있어 늦을 거란 이야기를 나눴기에 나는 책임의  막중함과 과감한 시도로 어머니의 불신을 타파하기 했다.


 큰 아이는 바다 중 광안리를 특히 좋아한다며 할머니 에서 수시로 엄마의 일이 끝나기를 확인하였다. 끙끙 앓고 계신 시어머니의 일은 자정을 지나 제사 직전까지 계속되리라. 세 동서의 출현이 예상되는 시점에 아이의 바람을 핑계 삼아 우리 가족은 광안대교가 눈 앞에 펼쳐지는 Coffee Smith로 갔다. 바다를 바라보고, 모래사장을 걷기도 하고, 제트스키가 모래사장 가까이에 까지 다가와 벌이는 거친 묘기를 보며 희희낙락했다.



 돌아가니 거실 가득 시댁 가족들이 모였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건강도 좋지 않으시면서 제사 준비에 온 힘을 다 쏟는 어머니를 성토다. 층층시하에  7대 종손 맏며느리인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무리하여 곧 병원행을 하실 것이라 말이나 논리로도 설득이 안되니 속상함을 비난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들과 한패가 되어 동의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여든이 되시는 어머니의 고단한 '제사 원칙'에 집단으로 항의하는 우리를 둘러보시던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효자 자식 하나도 없다." 신다.



 추석날 시간에 맞춰  도착한 제관들! 더 이상 둘 없는 구두들이 현관 밖에까지 즐비하다. 제사상의  공간에는 밥과 국, 밥과 탕수가 조상의 수만큼 번갈아 바뀌면서 차려졌다. 명절의 첫 밥은 장손 집에서 다들 드시고는 두 집 더 방문하여 제사를 지낸 뒤 선산이 있는 울산으로 간다.


 우리 가족은 아침 식사를 마지막으로 부산을 떠나  울산으로 향했다. 아이들에겐 기억이 가물가물한 할아버지일 테고, 남편에게는 더없이 애틋한 부친일 테고, 나와는 이렇다 할 추억이 없는 시아버님이시다. -가끔 책을 나눠 읽은 적은 있다. 최명희 씨의 10부작 '혼불'이 마지막이었다.  읽으신 뒤 보자기에 싸서 내게 돌려주셨는데 한참 후 암병동에 입원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부부는 병동에서 밤새 복도를 서성이며 반년 정도를 드나들었다. 시아버님이 사투를 벌이시던 안타까움의 시간이었다. 아버님의 산소에 가려면 언제부턴가 댐을 관리하는 관리인에게 신분증을 맡긴 뒤 다리를 건너  산속으로 가야 한다.



 나무에서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적막함을 깨던 산길을 한참이나 오른 뒤에야 도착하여 절을 올린다. 나는 숙모님과 시 할머님의 묘지 앞에 절하는 두 딸과 남편을 바라본다. 분명 나의 반쪽이나 아이들은 남편과 같은 성을 

가진 '경주 김 패밀리'들이다. 산을 내려가던 우리는 올라가는 친인척 일행들과 두 번 마주쳤다. 서로 대면 대면하기도 하고 친밀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묘함도 있었다. 댐에 있던 두 척의 배는 수로를 거슬러 올라가 성묘를 하게 될 또 다른 가족들이 이용하는 것이라고 다.


 울산을 빠져나오니 금세 경주다. 경주시의 톨게이트는 옛 왕조의 위엄을 알리듯 웅장하다. 그제 난리가 고 여진이 계속되는 탓에 추석날임에도 불구하고 지붕과 담을 수리하느라 사람들이 바쁘다. 정체와 순조로운 구간 통과를 반복하며 갈 때와는 달리 5시간이 훨씬 넘겨 집에 도착했다.


"'달님 안녕'이란 책 생각나?"

"그럼요."

하드커버지의 동화책을 기억하냐고 물으니 딸들은 달님 표정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단다. 대여섯 살 때 가지고 놀았던 책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는구나! 한가위 달은 구름 뒤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하고 다. 다들 슬리퍼를 신고 한가로이 숨을 쉬며 여유롭게 걷다가 구름 속에서 흰 빛으로만 둥글게 퍼져 나온 달님께 잠시 두 손을 모았다.


 기름진 제사음식과는 달리 집에 와서방금 한 밥에 팬에 전지를 가득 넣고 술과 후춧가루로 고기를 익힌 뒤 묵은지와 두부를  찌개를 끓였다-도로에서 장시간 시달려서인지 배도 고프고 뭔가 얼큰한 국물이 긴다. 부추 한 움큼으로 마무리 찌개시어머님 솜씨의 

고구마 줄기 찜으로 다들 행복함을 만끽했다.


 밤이 되니 큰 아이의 말이 생각나 다시 마음이 몰캉해졌다. 아이는 외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식사가 되었던 전어회의 기억으로 지금도 '전어' 이야기가 나오면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난다고 했다. 미국에서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자신은 일 년에 추석과 설 겨우 두 번 할머니를 만날 수 있는데 그나마 이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엄마, 제가 할머니를 백번 더 뵐 수 있을까요?"

부산을 떠나기 전 아이는 계단을 내려오다 말고 다시 뛰어 올라가 할머니를 껴안고  떠나왔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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