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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Dec 20. 2016

구식소풍에서 혼자만의 여행으로

외식보다 소풍


[한강소풍-서울]


반년만의 서울행이었다. 호텔에서 열린 결혼식

참석 다음날  우리 넷은 한강으로 소풍을 떠났다.

서울의 교통체증 힘들어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

아이들은 몇번이고 대중교통을 권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도로는 한적했고 도착한 곳의

주차공간도 넉넉해서  강변소풍의 시작이 좋았다.


달리기를 하는 한무리의 사람들을 가로질러 도착

 잔디밭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족의 일원으로

 강아지들은  낯선이들에게 경계를 풀고 꼬리를

살살 흔들며 흥겨워했는데, 홈쇼핑에서 인기 있는

제품인지 한번에 좍 펼쳐지 텐트는 색깔만

달리한 여기저기  세워져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피크닉 용품도 비슷하다. 같은 텐트에

헷갈린건지 강아지들은 수시로 우리 텐트안을  

들여다보며 넘어지기도 했다.  조심해!


집에서 사과와 포도 커피를 챙겨갔고, 김밥 만두  

닭강정까지 사서 갔지만 아이들은 꼭 해보고

싶었다며 인근 편의점에서 은박지에 라면을 끓여

왔고 치즈가 녹고있는 피자까지  박스에 담아왔다.

외국인들은 지나면서 한국 소풍의 내용물이 어떤

것인지 안보는척  보며 지나갔고 다른 무리들도

같았다. 아이들이 제안한 서울의 소풍이었다.



[용추계곡 소풍-문경편]


한강에서의 소풍 2주 후 우리는 문경에서 다시

만났다. 지금만한 계절이 어디있을까?그동안

일이 아무리 힘들었더라도  잠만 자는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 우리는 금빛 들판으로 나가기로 했다.

외식 대신 밥 싸서 소풍가자는 말은 운치 있지만

주변에는 김밥집도 없고 집에는 김밥 재료도 없다.

텃밭의 케일 잎을 잘라와서 후딱 데쳤다.

우엉채와 잔멸치 볶음 채친 무우김치 양념한

골벵이를 건네주며 아이들에게 소풍준비를 부탁

했다. 손이 야무진 작은 아이는 고두밥에 재료를

잘 섞어 예쁜 케일쌈밥을 샀고 큰 아이는 들쭉

날쭉한 크기로 재미있게 샀다.



용추계곡으로 향해가는 차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금빛도 제대로 만끽하려면 '타이밍'이라며,  

스쳐가는  시골과 산골 풍경에 저마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 했다.



20대에 자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나는 

계곡에 들어선 이후 아이 둘의 눈에 비치고 마음

으로 흘러드는 산과 물 바위를 홀리듯 바라봤다.

누워있는 부처상인 '와불' 처럼 보이던  큰 바위

앞에선 누구랄것도 없이 경외감으로 모두 합장을

. 계곡 물 속의 바위 하나가 커다란 실크

보자기처럼 너울사이로  물 흐르는 모습이

부드럽다.



바위 틈에 난 보라부추도 뽑고 빨강 독버섯은

피해가며 계곡물에 발도 담그고 커피를 마셨다.

쌈밥으로 복어배처럼 볼이 볼록해진 우리는

서로의 입만 바라봐도 우스웠다.오븐에 구운

고구마와 생채조림 이웃이 준 묵과 사과즙까지 

구식 소풍의 재미가 쏠쏠한 늦가을 시간이다.



양배추와 케일 브로컬리는 다 자랄 때까지

구별이 되지 않아 여러번 착각했다. 잎의 크기와

두께로는 구별이 쉽지 않았으나 다 자라서는

각자의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며 수확의 기쁨을

누렸는데, 오늘 소풍엔 보라색 양배추 피클도

한자리 했다. 지금의 계절엔  머루포도의  달콤함

절정이다.구식 소풍의 백미는 역시 찐계란과 톡

쏘는 사이다인데 다음번엔 잊지 말아야겠다.



[2016  마무리-혼자만의 여행]


아이들은 계획했던 대로 각자 제주도와 홍콩으로

떠났다. 어딜가나 커플과 소란한 단체 관광객들

사이에서  혼자만의 여행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제주도>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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