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묵과 손두부
전화벨 소리는 들었지만 전화를 받진 못했다.
저녁 무렵에야 정신이 맑아져 두 분 이웃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다짜고짜 내일 오전 11시에
°° 다리 부근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러지 말고 우리 집으로 놀러 오시라고
했지만 두 분은 내일 볼 일이 있으니 잠깐
얼굴만 보자고 하셨다.
"스파이들의 접선도 아니고 무슨 수수께끼
같은 말인지?" 나 보다 한참이나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라 자초지종을 묻기가 조심스럽다.
다음날 약속된 시간에 맞춰 그분들의 집 방향
으로 가려는데 대문 앞에 트럭 한 대가 서서
경적을 울려댄다. 두 집을 대신하여 윤혜선
어르신의 노총각 아드님이 뭔가를 우리 집 대문
안으로 옮겨 놓았다. 여름 어느 날 정말이지
꽃소금을 뿌린 듯 피어났던 메밀꽃! 꽃이 진
자리에 달렸던 메밀을 수확하여 묵을 만든
셨나 보다.
보내온 것은 두 분 댁에서 만든 두 종류의 손
두부, 메밀묵, 서리태 그리고 커다란 통의
유기농 오미자였다.
'홈메이드' 선물이 빚어낸 감동은
영혼까지 따뜻하게 한다.
그분들은 명절을 지내러 도시로 가서 언제 마을
로 돌아올지 모르는 나를 위해 묵과 두부를 보
관 하느라 무척 애를 쓰신 듯하다. 그 마음을 알
기에 뜨거운 물에 데쳐내어 찬바람에 한 김을
날려놓았으니 앞으로 며칠은 안심이다.
오늘 저녁 메뉴는 묵밥이다. 친정 엄마가 두고
떠난 그릇을 꺼냈다. 생전에 어머니가 좋아하지
던 묵밥을 만든다. 단맛은 치자 물들인 단무지
로 대신했고 새콤한 맛은 만개한 베고니아 꽃을
로 맛을 냈다. 동김치의 흰 무도 채 썰었다.
멸치와 다시마 국물에 김가루를 비벼 넣고 다진
파와 깨를 갈아 넣은 양념장을 차려낸다.
'맛있는 음식은 마음을 먹는 것!'이라는 말이
오늘 밥상을 설명한다. 어느 봄날 나의 집을
별안간 방문할 두 이웃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