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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Oct 27. 2016

우발적으로 담근 백김치

6천 원에 배추 세 포기가 생겼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빠져나오다 보니, 저만치에 효소 축제를 한다며 사람들이 모여있다. 몽골의 게르(Ger)처럼 생긴 천막이  늘어서 있고  관광버스에서 내린 어르신들은 행사에 초청된 트로트 가수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신바람이 나있다.


 영문은 알 수 없으나 감독이 사라지자 일꾼들이 도망친 것처럼 대부분 천막엔 지키는 사람조차 없다. 다들 저 무대 위의 가창력 좋은 여가수 노래에 맞춰 추는 무리 속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모르겠다.



 주변의 열정적인 춤사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툭터인 행사장 한 편의 트럭에서 열심히 배추를 파는 아저씨가 있다. 아주머니들이 줄을 서서 배추를 사고 있었고 엉겁결에 나도 그 줄에 끼어들었다. 나는 호기롭게 세 포기를 달라고

했다. 남편은 계획에 없던  나의 배추 구매에도 차분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째가 아니란 반증이기도 하다.


 그에게 배추 자루를 넘긴 채, 팔순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계신 표고버섯 천막으로 갔다. 젊은 사람들은 추수로 바쁜지 마을회관 친구인듯한 두 분은 만원 어치의 버섯을 담는데 엄청 어설퍼 보였다. 아무 말 않고 지켜보는 나와 눈이 마주치니 버섯 세 개를 더 넣어주셨다.



 다시 서울을 거쳐 집으로 돌아온 밤엔  가을 찬비가 내렸다. 데크 위에 놓인 이 배추로 무엇을 할까? 백김치를 만들어보자! 솜씨 좋은 시어머님도 이건 자신 없다 하셨는데. 아무리 망설여도 이 배추를 나 대신 무언가로 변화시킬 사람이 우리 집엔 없다. 그렇다면~



 겉잎은 데쳐 고추장과 된장으로 나물무침을 했고, 몇 장은 남겨 배추 전용으로 준비했다. 백김치 레시피를 검색해 보니 집에 없는 게 대부분이다. 일단 신선한 생강을 텃밭에서 한 뿌리 뽑았다. 작은 대나무 같은 초록 줄기 아래에서 연노랑 생강이 딸려 나왔다-예쁘다. 당근도 없다.- 단감으로 대신하기로 했고. 실파도 없다-서너 번 자른 후 다시 올라온  텃밭의 대파로 대신했다. 향기 좋은 표고버섯은 고급스럽게 듬뿍!!!



 대추 말려둔 것은 물에 불리고 추석 때부터 있던 배 한 덩이, 사과주스  팩, 생강, 마늘, 밥 한 공기, 새우젓을 믹서기에 돌려 소쿠리에 내리니 국물이 아주 뽀얗다. 밥상에 낼  적당한 한 접시 분량으로  배추를 나눈 뒤 속을 넣었다.



 배추전은 두 번 해서 먹었다. 한 번은 소금에 살짝 절여서 구웠고, 다음번엔 물에  데쳐서 구웠다. 전통 깊은 안동에서 주로 해 먹던 거라는데 어느 곳에 서면 어떤가? 배추전은 시원한 맛이 좋다. 속이 덜 찬 배추 한 포기는 샤부 샤부용으로 냉장고 야채칸에 넣어두었다.



 국물을 부어두었으니 이틀쯤 후엔 영양만점 백김치를 상에다 차려낼 수 있겠지? 두 포기로 두 통이 완성되었다.

"Q:당신은 무엇을 할 때  즐거운가요?"

퇴직 전까지 요리는 내게 어렵고 부담스러운 그 무엇이었다. 하지만 지금 요리는 내게 즐겁고 도전적인 것이 되었다.




 +이틀 후

날마다 밥상엔 두 종류의 백김치가 번갈아 오른다. 음-건강하고 시원하며 톡 쏘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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