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빠져나오다 보니, 저만치에 효소 축제를 한다며 사람들이 모여있다. 몽골의 게르(Ger)처럼 생긴 천막이 죽 늘어서 있고 관광버스에서 내린 어르신들은 행사에 초청된 트로트 가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신바람이 나있다.
영문은 알 수 없으나 감독이 사라지자 일꾼들이 도망친 것처럼 대부분 천막엔 지키는사람조차 없다. 다들 저 무대 위의 가창력 좋은 여가수 노래에 맞춰 춤추는 무리 속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모르겠다.
주변의 열정적인 춤사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툭터인 행사장 한 편의 트럭에서 열심히 배추를파는 아저씨가 있다. 아주머니들이 줄을 서서 배추를 사고 있었고 엉겁결에 나도 그 줄에 끼어들었다. 나는 호기롭게 세 포기를 달라고
했다. 남편은 계획에 없던 나의 배추 구매에도 차분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째가 아니란 반증이기도 하다.
그에게 배추 자루를 넘긴 채, 팔순은 되어 보이는 두 할머니가 계신 표고버섯 천막으로 갔다. 젊은 사람들은 추수로 바쁜지 마을회관 친구인듯한 두 분은 만원 어치의 버섯을 담는데도 엄청 어설퍼 보였다. 아무 말 않고 지켜보는 나와 눈이 마주치니 버섯 세 개를 더 넣어주셨다.
다시 서울을 거쳐 집으로 돌아온 밤엔 가을 찬비가 내렸다. 데크 위에 놓인 이 배추로 무엇을 할까? 백김치를만들어보자! 솜씨 좋은 시어머님도 이건 자신 없다 하셨는데. 아무리 망설여도 이 배추를 나 대신 무언가로 변화시킬 사람이 우리 집엔 없다.그렇다면~
겉잎은 데쳐 고추장과 된장으로 나물무침을했고, 몇 장은 남겨 배추 전용으로 준비했다. 백김치 레시피를 검색해 보니 집에 없는 게 대부분이다. 일단 신선한 생강을 텃밭에서 한 뿌리 뽑았다. 작은 대나무 같은 초록 줄기 아래에서 연노랑 생강이 딸려 나왔다-예쁘다.당근도 없다.- 단감으로 대신하기로 했고. 실파도 없다-서너 번 자른 후 다시 올라온 텃밭의 대파로 대신했다. 향기 좋은 표고버섯은 고급스럽게 듬뿍!!!
대추 말려둔 것은 물에 불리고 추석 때부터 있던 배 한 덩이, 사과주스 두팩, 생강, 마늘, 밥 한 공기, 새우젓을 믹서기에 돌려 소쿠리에내리니 국물이 아주 뽀얗다. 밥상에 낼 때적당한 한 접시 분량으로 배추를 나눈 뒤 속을 넣었다.
배추전은 두 번 해서 먹었다. 한 번은 소금에 살짝 절여서 구웠고, 다음번엔 물에 데쳐서 구웠다. 전통 깊은 안동에서 주로 해 먹던 거라는데 어느 곳에 서면 어떤가? 배추전은 시원한맛이 좋다. 속이 덜 찬 배추 한 포기는 샤부 샤부용으로 냉장고 야채칸에 넣어두었다.
국물을 부어두었으니 이틀쯤 후엔 영양만점 백김치를 상에다 차려낼 수 있겠지? 두 포기로 두 통이 완성되었다.
"Q:당신은 무엇을 할 때 즐거운가요?"
퇴직 전까지 요리는 내게 어렵고 부담스러운 그 무엇이었다. 하지만 지금 요리는 내게 즐겁고 도전적인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