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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Aug 15. 2017

백련

이러다가 내가 연이 되고 말겠어!


 "오늘 여행가요!"

'산골 허세'다.

김새는 밥솥을  AS center에 맡기러 가며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툭 던졌다. 

"외식도 하고 야생화 농원 구경도 하면 좋겠네." 한걸음 더 앞선 그의 말이다. 콘셉트를 정하고 나면 길이 달라져야 한다. 위성에서 친절하게 알려준 지름길은 무시한

 은척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굽이진 길 곳곳엔  초록 풍경들이 너울거린다. 기대가 크면 실망하기가 쉽지만 무심하게 나다가 다시없는 풍경을 만나면 감동이 커져 마음은 벅차다.



 자주 이용하던 길이었지만, 작년에 넓고 시원 도로가 개통되면서 시내 가는 시간을 반으로 줄일 수 있어 잊었던 도로였다. 일부러 향한 곳에 오늘 흰 연꽃이 피어나 있다. 논 둑을 뛰어다니며 연밭을 둘러보다 어느 지점에서 나는 조용히 앉았다. 그동안 여러 번 연꽃과 연단지 들을 구경했지만 이리 홀로 백련을 마주하긴 처음이다. 평화로움과 신성함이 밀려드는 찰나였다.




 느린 바람이 불었는지 잎을 다 떨군 연 씨 아래 금빛 꽃술들이 햇살에 빛나고 있다. 나의 숨소리조차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연잎과 연꽃과 연향이 순식간에 나를 그들을 반영(reflection)시키는 물 그림자로 만들었다.

"이러다가 내가 연이 되고 말지!"



 쪼그리고 앉았던 다리가 저려와 자리를 옮기 개한 백련 한송이가 더 가까이에 피어나 있다. 아스팔트 길은 물론이고 온 들판이 버릴 듯한 무더위에 이 섬세하고 투명한 꽃잎은 어찌 이리 깨끗하고 흠 없이 고울 수 있을까? '신비 만끽'중인 아내를 이해하는 J는 느긋하게 차에 에어컨을 켠 채 누구의 방해도 허용하지 않은 문지기 마냥 연밭 입구에 있다. 연꽃에 대한 나의 애정과 흰색 꽃들에 대한 각별함아는 그는 재촉은 고사하고 어떤 말도 않았다. 

 


 중국 청나라 시대 장조라는 분은 후대의 나와 같은 사람처럼 연꽃에 매혹되어 이런 글을 남겼다.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꽃들은 대개 향기가 별로 없다.  또 꽃잎이 여러 겹으로 되어있는 꽃들은 대개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것은 애석한 일이구나! 완전무결 하기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로다. 

오직 연꽃만이 완전무결하구나!"

고운 빛깔과 그윽한 향기 풍성한 열매를 다 갖춘 연에 대한 시인 장조의 표현에 이심전심이 된다.



 자주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리고 꽃을 보면 샛길 빠져버리는 나 지만 더위를 더 이상 견딜 수없어 얼마 후 차에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달이 휘영청 밝은 보름에 다시 오고 싶다. 이슬 머금은 잎과 습지에서 솟아오른 청정한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존재만으로 보는 이에게 '깨달음'을 주고, 결연한 아름다움을 주며, 완벽한 형태와 섬세한 꽃잎의 균형미를 보여주며, 만다라 원형의 상징이며, 수많은 세계 요가인들의 마음 중심이 되어주는 꽃. 종자 수명이 길어 2,000년 묵은 종자가 발아한 예가 있기도 한 고고함을 지닌 연! 불바다와 전쟁을 입에 올리며 온갖 독설을 뿜어대는 그들의 파워게임에 심란한 광복절, 양극화의 그늘에서 힘들어하는 서민들, 리를 갈구하며 답답해하는 청춘들,,,,  

온갖 고통으로 신음하는 시대에도 연꽃은 피고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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