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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Aug 30. 2017

용궁마을

토끼와 거북이가 아닌 내가 용궁으로 간 까닭은?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꿈 하나가 있다. 망망대해 바닷속이었으며 목적지

는 용궁이었다. 오늘은 그 꿈을  해몽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용궁마을(경북에 이런 이름을

가진 마을과 역이 있다)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나는 토끼가 되어 바닷 거북이의 등을
타고
용궁으로 향하는 꿈이었다.



가던 길- 바다는 깊고  물살은 세찼지만 바닷속

깊은 곳까지 햇빛이 들어와 환했다. 꿈속에서 

토끼는 나였고 물살을 헤치며 지느러미 몸통을

흔들어 앞으로 나아가는 바닷거북은 남편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꿈을 꾸고 있음을 자각하며 토끼

  나와 철인 삼종 경기의 주자처럼 보이던

남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하얀 털에 물 한 방울이 묻지 않고

바닷속에 있는 거지?" 

 

꿈속의 용궁에 도착하기 전에 실제 우리는 비행

기를 탔고 함께 해외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가던 바닷길의 헤엄 장면은 그쯤에서 끝났다.

우리는 낯선 땅 Vietnam 호찌민시에 도착했다.

미국과 베트남 정식 수교가 재개된 즈음이었다.

해외자본이 러시를 이루며 베트남으로 들어갔고

다국적 기업들은 자기네 나라 국기와 베트남

국기를 회사 앞 국기봉에 나란히 내걸어 펄럭이게

했지만 우린 회사 이름만 내걸었다. 미국법인인

만큼 월남전의 어두운 과거를 자극하여 그들을

분노케 할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의 일들은 정말이지 다사다난했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과도기를

보았고, 나라가 개방되면서 일시에 몰려든 재화

와 넘쳐나는 기회에 사람들의 생활과 나라 전체의

인프라가 고속으로 변해가는 걸 체험했다.

사업계획에 맞춰 직원 수가 늘고 회사 규모를

급속히 넓혀가며 일어난 일들바닷속 물고기와

해초들의 이야기보다 복잡했다. 물론 끊임없이

덮쳤던 해일까지! 바다의 폭풍우가 지상에서 

벌어진 트러블의 현장이라고나 할까? 


오늘 나는 경상북도 예천에 위치한 용궁면에

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전엔 이렇게까지

유명하지 않았던 식당이 작년에 백종원 씨의 삼대

천왕에 나온 후 맛집으로 더 소문이 났다고 한다.

도심지와 떨어져 있어 평일엔 좀 한산하지

주말 마치 시골학교의 총동문회 날인 듯 차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Q:요즘 세상은 뭐를 이렇게 정하는 게 많은지!

     삼대 천왕은 대체 뭐란 말인지?


연탄불 위 석쇠에서 구운 불고기와 순대국밥

먹고 인근의 작은 학교로 갔다. 동네분인 듯한

노인이 앉아서 지나가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

본다. 인사가 서로를 방해할 것 같아 그냥 지나

쳤다. 순대축제까지 있는 유명한 마을이지만 토박

어른들은 경제적인 혜택에서도 시끌벅적함

에서도 소외되어 있다.



며칠 동안의 노동에 대한 쉼으로 나온 터라

하게 이면 도로를 걷기로 했다. 낮은 산 아래에 

위치한 집엔 노인들만 기거하는 듯하다. 중간

중간 전원주택이 폼나게 들어서 극적대비를

이루고 있다. 언젠가 오래된  집들은 자손들이

돌아와 살지 않는다면  폐가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걷고 또 걸었다. 꿈속 미완성이었던 용궁

가던 길을 육지의 용궁마을에서 완성하듯 충만한

마음으로! 동네에 자라는 것들은 다 이 땅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다. 호박과 애호박, 병꽃과

능소화, 호두와 벼, 닥나무  배롱나무, 대추 등...


"당신에게 행복은 뭐예요?"

"음~

좋아하는 일하며 좋은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

"맞아! 가끔 맛난 것 먹으며 낯선 동네를 천천히

산책하는 일도 좋아."

 

컨테이너의 진밤색 녹도 담쟁이넝쿨이 모퉁이

에서 받쳐주니 멋진 풍경이 된다. 금이 간  담벼락

사이에 피어난 진분홍 병꽃도 아름다웠고 도로변

에  보라꽃 피는 배롱나무를 심은 사람은 누구

였을까? 궁금해졌다. 마을의 나무들은 초록 속

에서 서로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다음 골목으로 들어서니 누군가 옥상에 호박을

심어 두었다. 테두리 틈새로 호박꽃이 피었고

단단한 호박은 사람 구경 동네 구경을 하고 있다.

애호박 하나는 된장찌개에 넣고 끓이면 맛나겠고

길게 늘어뜨린 넝쿨손이 시원하다.  안에 대추

나무를 심으면 자손이 번창한단 말이 있는데 담

너머까지 실한 열매가 달렸다.


고택 담은 얼룩져 있고, 위로 바라보니 까마득한

사당 하나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망루에

이르진 못했다. 독립운동을 했던 이 마을 어르신

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들도 줄지어 서 있다.

범상치 않은 마을이다.



논 뒤의 풍경이 되어주었던 교회 첨탑은 이곳

에서 보니 어색하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로의

다시 못 올 여행이라면 발길을 멈추고 모든 것에

추억의 한 땀을 뜰만한 풍경들이다. 대추 못지

않게 밤도 실하게 달렸다.  


화강석 위로 뻗어나가는 담쟁이덩굴에 벌써 단풍

든 잎들이 생겨나는 걸 보니 가을은 이미 저 초록

안에서 조금씩 제 숨을 불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집은 어찌 이리도 포도나무로 근사한 현관

입구를 만들었을까? 주인의 안목이 엿보인다.


누군가가 땅에 화분을 묻어 연을 키우고 있다.  

초록 씨앗은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 같고  익은

다갈색 씨앗자다 깬 ET 같다.


[용궁 가는 꿈의 해석은 이랬다]

§. 불만스러웠던 주변 환경에서 벗어나 자유로워 

    진다는 암시이며 행운이 뒤 따른다.

§. 바다를 해엄 쳐 건너가는 꿈은 평소 바라던

    원이 이루어지게 될 것을 암시.

§.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며 큰 수익을 얻게 될 것을 암시한다.

§. 거북이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꿈에서

     바다는 넓은 세상을 의미한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말

 "인생에 트러블이 없는 것이 더 문제다."

무슨 의미 인지를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떻게 내륙에 위치해 있으면서 '용궁마을'

이름 지어졌을까? 나는 오래된 꿈 하나를  이

마을로 인해 다시 기억했고 이제야 꿈 해몽을

하며 지난 시간을 반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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