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희 Aug 21. 2017

쿠사마 야요이와 나의 호박 이야기

데자뷔 1



    "이런 호박을 어디서 보았더라?어디선가 아주 비슷한 걸 보았는데.... 맞다!

Kusama Yayoi의 호박!

    텃밭에서 줄을 타고 올라가던 호박에 동화 속 도깨비방망이의 혹(야요이 작품의 polka dot을 연상시켰다)이 생기더니, 다른 한편에선 판다의 흰색 털처럼 뭉텅한 노랑이 생겨났다



    호박을 심은 이유는 당연히 먹기 위해서였다. 커가는 대로 따서 새우젓 넣은 호박볶음을 하거나, 비빔밥 나물로 만들거나, 된장찌개에 넣었다. 양이 많아지면서부터는 썰어서 말리기까지 했다. 호박이라면 애호박과 조선호박 단호박 정도가 익숙했는데 올해 텃밭엔 새로운 호박들이 줄지어 달렸다.


     때마다 야요이의 호박 생각이 났다.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를 보러 갔던 미술관 앞 잔디밭에서 나는 처음 그녀의 거대한 작품 '노랑 호박'을 보았다. 첫인상은 뭔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광기와 답답함이었다.



    야요이의 호박이 생각난 이후부터 나는 수시로 그녀의 삶과 예술에 대한 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자료를 보는 내내 명성의 정점을 찍으며 세계적인 성공을 이룬 그녀에 대하여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잠깐 보았던 그녀의 작품이 내게 이렇듯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는 이유는 왜일까? 지나고 보니 당시 나의 답답함은 강박증과 환영을 병으로 앓으며 80년 가까이 예술작업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생사를 넘나들던 한 사람에 대한 버거운 느낌이었던 것 같다. 

    볼수록 표현의 힘이 대단한 천재다!


화해를 이룬 야요이의 호박과 나의 호박들


    야요이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나는 그녀의 호박 작품과 다른 상징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텃밭과 정원 기록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호박의 연하고 식욕 돋게 하던 껍질의 도톰함은 사라지고 딱딱해져 있다. 줄기가 물러져 더 이상 매달려 있기가 힘겨워 보이는 호박들은 거두었다. 햇빛에서 속 씨앗이 영글기를 바라며 암석 위에 올려두었다.



    야요이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 생김새만으로도 위로가 되어주었던 호박이, 나에게는 기른 기쁨과 수확해서 두고 볼 수 있는 웃음 주는 호박이 되었다. "어떤 절망에서도 우리는 좋아하는 한 둘을 가슴에 품고, 표현하며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음식으로서의 호박의 유용성은 말하기 입 아플 정도지만, 야요이의 호박으로 인해 상상력이 엄청나게 부풀러 오른 나는 갑자기 나오시마 섬에 가고 싶어졌다. 미야노우라 항 선착장 끝머리에 놓인 쿠사마 야요이의 빨강 호박과 바다를 배경으로 놓여 있다는 노랑 호박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출처:flickr.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