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희 Sep 01. 2017

오동잎 접시와 주먹밥

재료의 한계에 맞서다


[3] 주먹밥과 떡볶이+핫도그


 일하는 엄마의 자식들은 전업주부인 엄마를 아이와는 다른 집 밥의 기억을 갖고 산다. 모두에게 저녁은 외식으로 송어회를 먹자고 말했다. 그러나 외식이 싫다며 큰 아이 무조건 집 밥을 먹자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이 일하며 하루 종일 혹은 일주일 내내 외식을 하는 거다. 워킹맘에서 퇴직했으니 그동안 못해준 집 밥을 해달라는 것인지.....?


 서울에서 유행하는 거라며 떢볶기에 핫도그는 본인이 준비할 테니 엄마는 주먹밥을 해줄 수 있겠냐고 한다. 김밥은 나름 재료들이 좀 길쭉해야 하지만 주먹밥은 어떤 식재료든 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재료는  텃밭의 작은 감자만 한 비트, 묵은지, 단무지-썰어서 물기 짜고, 볶음멸치, 파, 가쓰오부시와 섞어 기름 넣고 뭉치면 된다.


 밥상의 백미는 눈으로 즐길 수 있는 것! 오늘은 오동잎 하나가 밥상에 올랐다. 하지만 너무 크다. 작은 잎 하나를 더 잘라와 겹쳐 놓으니 초록 식탁보가 되었다. 들쑥날쑥하지 않게 같은 크기의 주먹밥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둘째다. 뭐든 잘한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

2017/08/26


[2] 주먹밥과/ 쯔유 가락국수


 문객이 가져다준 쯔유 가락국수 생면 일부를 냉동고에 얼려두었다. 모든 생면을 그렇게 보관해두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쯔유 소스를 접시 붓고, 삶은 생면 위에 김과 파만 올리면 된다. 오늘도 아이들은 엄마에게 주먹밥을 해달란다. 식용꽃 이것저것을 딴 뒤 데코레이션은 아이들에게 맡겼다. 코스모스와 삼엽 국화 베고니아를 배열하며 몇 번이고 웃음이 터진다. 눈으로 먼저 먹은 뒤  이야기를  쏟아낸 밥상 되었다. 재료는 오미자청과 파인애플 식초, 김, 단무지, 당근, 소금,  참기름이 들어갔다.


2017/08/12


[1] 주먹밥과/열무국수


 비트의 활용법을 생각지도 못하고 심었을 땐  무만 하게 크더니 올해는 제일 큰 게 달걀만 하다. 비트는 연한 줄기까지 다 채 썰어 소금에 절여면 단 맛이 남는다. 신선한 채로 밥에 섞어도 좋으며 자줏빛 보라가 구미를 당긴다.

식구들의 요청으로 오늘 주먹밥은 텃밥의 깻잎과 당근 비트 그리고 오이장아찌와 김치썰어 물기를 짠 뒤 참기름만 넣어 뭉쳤다. 과일수로 만든 열무김치 국수와 함께 폭염이 계속되던 날이었다.


2017/07/30

 네 식구가 2주에 한 번씩 만나니 한 달 동안 세 번 주먹밥을 해먹은 셈이다. 남은 밥은 오동잎에  그대로 접어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찰기가 생겨 더 쫀득한 맛이 된다.  펼쳐서 먹기만 하면 되니 편리하다. 아이들이 일 하면서도 간단히 준비수 있는 집밥으로 더없이 적당한 메뉴다.



[오동나무에 하여]

 년에 어디선가 씨앗 하나가 날아와 자라기 시작했다. "여기 이런 나무가 자랄 곳이 아닌데!" 싹둑 잘라버렸다. 올해는 한번 베어낸 자리에, 새순을 낸 오동나무 중 최상으로 치는 손 오동이 날마다 자랐다. 키친가든에 커다란 잎으로 그늘을 드리워 채소들의 성장에 방해가 되어 이번엔 잎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부드러운 털이 난 줄기를 가진 나무있다니! 느낌이 하도 좋아 잘라낸 잎을 한참이나 어루만졌다. 우산이 되어도 좋겠고 햇빛을 가리니 잎맥이 섬세하게 비친다. 이렇게 잘라서 버릴게 아니라 다음 주에 아이들이 오면 오동잎 접시로 써보기로 하고 자르던 것을 멈췄다.



 일 년에 100~250cm가 자란다더니 세 번의 상차림 후에도 더 많은 잎을 내며 키가 훌쩍 커졌다. 이순신 장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났을 때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이유는 아들이 자라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에서였다고 한다.


 비싼 조리원에서 회복을 하는 것도 좋고 (그곳에서 아이의 인맥을 엄마들이 만든다고도 ), 호텔에서의 화려한 돌잔치도 좋고, 아이를 위해 영재원을 찾아다니는 것도, 미성년 자손에게 거액의 유산을 상속하는 것도 괜찮으나, 나는 집안에 아기가 태어나면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오동나무를 심고 싶다.


 돌아가시기 전 이순신의 어머니가 장군께 이런 말씀을 남겼다고 한다.

"오동나무엔 봉황이 앉아.  봉황은 오동나무에 앉아서 대나무 열매만 먹어. 그런데 대나무는 뿌리 번식이 불가능해. 열매를 맺고 죽기 때문에 길게는 백 년을 기다려야

하지. 그래서 봉황은 큰 뜻을 기다리는 사람을 뜻하지. 너도 그런 사람이 되거라..."


[중략]

 <맹자>에 하늘이 큰 인물을 보낼 때는 반드시 시련을 준다고 하지 않았니? 네가 겪은 어려운 모든 일들도 모두 큰 인물 성장하기 위한 과정임을 알고 큰 뜻을 품어라."


 마지막으로 자식이 청렴정신을 잃을까 봐, 소나무 느티나무로 만든 관이 아닌  소박한 오동나무로 만든 관으로 장례를 치르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훌륭한 자식을 갖고 기른 부모의 남다름을 생각하게 하는 오동나무 이야기! 주먹밥 접시에서 나는 한참이나 멀리 왔다. ㅎ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Glass Gem Corn-유리 보석 옥수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