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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Oct 24. 2017

우리는 유등이 아름다운 물 위를 걷기 시작했다

창조의 폭발이 이뤄진 것은 아닐까?


시원하게 쏟아지던  수승대의 물길을 뒤로 한채

거창을 떠나 저녁 무렵에야 진주에 도착했다.

매운 아귀찜을 먹으며, 촉석루와 남강을 걸어서

갈 수 있는 숙소를 찾아 하룻밤 묶기로 했다.

신축 건물인 H. The V로 정했는데 우리 외에도 

타지에서 진주 남강 유등축제를 보러 온  다른

가족들이 보였다.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여기저기를 하도 많이

걸어 다녀 몹시 피곤하여 다들 좀 쉬었다가

밖이 깜깜해져서야 남강으로 향했다. 하늘

저만치에 홍등이 보인다. 외지인들은 만 원

짜리 표를 사야 했고 진주 시민들에겐 무료

라고 한다.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청년

들이 진주시민이라 우기는  아가씨들에겐 표

없이 통과시키는 폼이 밉지 않다. 청춘들!



길을 내려서며 본 강물 위에 떠있는 유등은 놀랄

만큼 규모가 크고 정교했으며, 그 수가 많아서 

보느라 걸음을 옮기기 어려웠다. 연분홍과 

분홍 보라와 흰색이 뒤섞인 옷을 입은 선녀가

하늘을 오르는듯한 형상의 등을 보니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저 강을 건넌단 말이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강물 위를 줄지어!


물 위를 걸었던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는 어릴 적

부터 지금까지 내게 몹시 가슴 설레는 기적으로

남아있다. 꿈속에서 한 발을 내딛고 연이어 다른

발을 내디뎌 보았지만 나는 이내 물속으로 곤두

박질 치는 꿈을 자주 꿨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강물 위를 걷고 싶은 바람은 말릴  없는

내 꿈속의 단골 주제가 되어 있었다. 



축제에선 물 위를 걷는 일을 간단한 아이디어

해결해 놓았다. 부교를 강물에 띄워 사람들이 건너

도 가라앉지 않게 해 놓았는데, 강물 소리를 

아래로 들으며 아슬아슬하게 건널 있어 신이

났지만 한편으론 너무 쉽게 이뤄진 일이라 기가

막혔다. 강을 건너니 대갓집 솟을대문 서너 배

는 됨직한 높이로 만든 터널에 소원을 써 붙인

색등이 위용 자랑하며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앙증맞은 캐릭터 유등과 아름답고 거대한 유등

을 지나니 동화 속 주인공들과 서당의 모습이

강 저 멀리에 떠 있다. 육안으로는 잘 보였지만

정작 사진으로는 남기지 못했는데. 장마당이

열린 것 마냥 사람들이 몰려든 곳에 목을 빼고

바라보니 날개를 퍼덕이며 입에서 불을 뿜는

공작이 쌍으로 바쁘다. 그 옆 붉은 용의 입에

서는 큰 소리와 함께 불덩이가 뿜어졌고 연기

까지 더해져 용트림이 대단했다. 천을 재단

하여 비늘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색을 입힌

뒤 구조물에 입혀 용의 특징들을 내부에 장착

하여 완성한 정성과 기술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디테일을 조율하고 아름답게 구현한

축제를 준비한 생면부지의 들께 감동했다.



강을 가로지른 두 개의 부교로는 몰려드는

사람들이 다 건너지 못했다. 여러 무리의 사람

들은 진주교를 지나게 되었는데 열을 지어 달린

금빛 야광 터널은 보석 동굴처럼 반짝거렸다. 

유등은 입구도 좋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난도가 높은 작품들이 많았다. 대숲에 위치한

죽순과 메뚜기 풀벌레들과 달팽이 등은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사람의 물결은 갈수록 많아졌고 소란스러웠다.

반면 칡흑의 밤과 온갖 색등이 물에 고스란히

비친 강물은 검고 화려하면서도 고요했다. 연신

감탄을 쏟아내던 우리는 유등만으로 시골집

풍경과 진주대첩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곳

에서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한참 머물렀다. 



유등은 경남 진주에서 행하는 풍속의 하나로

강물 위에 여러 가지 색깔의 등불을 띄워 복을

빌며 즐기던 놀이로,  논개의 넋을 기리는데

뜻이 있다고 한다. 강물에 등을 띄우는 축제는

세계 곳곳에 있다. 나는 오래전  타이베이와 태국

에서  소규모의 등을 보긴 했지만 색의 찬란함과

압도적인 규모의 다채로운 이야깃거리를 이토록

명쾌하게 풀어낸 축제는 진주가 으뜸이지 싶다. 

지구의 작은 한편 진주에서 창조의 폭발이 일어

나고 있구나 싶었다. 우리는 다시 와보고 싶은

마음을 남기고 진주를 떠났다. 

삶에는  이런 감동이 있어야 한다.


[해외의  lantern festival]

출처:english.vietnamnet.vn-Hue City/

         flickr.com-Hirosima/guardian.

         co.uk/Hawaiinewsnow.com/

         wordpress.com-Obon festival

         

유등 사진을 정리하다 문득 논개 어르신의

넋을 기리며  마음으로 등 하나 강물에 띄우고

싶어 졌다.  


한편으로 유등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 고립

되었던 김시민 장군과 병사들이 군사 신호와

통신수단 왜군의 도하를 저지하는 전술용으로

남강에 등불을 띄운 것이 그 기원이라는 이야

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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