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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Nov 27. 2017

19인의 가족 여행

먼 훗날을 위한 스토리 만들기!

여행 한번 가는 것 어때? 가족행사 때라야

만나는 사람들끼리 숙박을 하는 여행은 좀

꺼려졌던지 의외라는 표정을 짓던 세명의

동서들! 음~ 생각해 보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말은 사람에게 일단 전해지고 나면

뭔가가 덧붙여진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라며 막내동서가 거들더니 곧바로 9월

가는 게 어떠냔다. 아쌀한 여자들 넷! 서울

시누이가 올케들의 결정에 흔쾌히 따른다면

다섯 명이 될 테고. 시댁의 작은방에 모여 

그렇게 우리는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때가 설날이었으니, 거의 반년 후에 

여행을 가기로....


IF, 이 여행을 시숙이나 시동생 혹은 셋째인

남편이 주도했다면 앉은자리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을까? 우리는 아이들을 다 키운 엄마

이며 그동안 숱한 집안 대소사를 맡아서 해온

며느리들이라 남편과 아이들의 의견은 묻지도

않았다. 상대의 의견이 중요할 때도 있지만

이런 경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게 되면 결정

내리기가 어렵고 진행도 안된다. 가족별 참가

인원만이 중요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고, 가긴 할 건가? 싶기도 

 어느 여름날 가족 단체 sns 방에 날짜에

이어 여행 참석인원의 정보가 올라왔다. 각자

의견이 구구할 거라 예상했는데 "안동으로 여행

가자"는 나의 제안만장일치였다. 나의 두

딸은 흔쾌히 대답은 했지만 어른들과 사촌들

과의 어색한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고 한다. 시댁 대소사에 수동의

끝판왕인 내가 이리도 나서는 것에 다들

의구심 품었을 것이다.




구성원인 80대에서 20대까지를  만족시켜야 

하는 여행의 목적이 있어야 했다. 며느리

에게 뿐만 아니라 아들들에게까지 애. 증

(사랑과 미움)의 관계인 시어머니의 성을  

고향 방문 '권(안동 권 씨)'의 뿌리를 찾아서'

정했다. 퇴직 후 우리 부부는 시어머니와 안동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나 보다 더 기운생동 

하셨 어머니는 안동 민들레캐느라 열과

성을 다 쏱으셨는데  상황은 코믹했다. 교사

였던 부친의 임지를 따라 여덟 살에 떠난 고향을

하도 그리워하여 왔건만 아무도 지키지 않고 

누구도 돌보지 않는 풀로 분류된 민들레를

뽑느라 아들과 며느리를 보초 세웠던 것. 전원

으로 이사 온 후 나는 시어머니께 택배보낼 

때마다 그때를 기억하며 노랑과 흰색 민들레

듬뿍 보내드린다.


7월 여행 첫날 계획을 가족 sns올렸다.

다들 조심하느라 행사 때가 아니면 냉기가 감돌

았는데 여행 계획이라 그런지 반응이 뜨거웠다.

컴퓨터 화면에 위성을 띄워남편과 나는

방문할 곳과  숙소 임청각에서의 시간과 거리를

살폈다. 관절이 좋지 않은 어머니의 보행을 염두

에 두었고, 안동둘러보는 기본적인 일정

외에도 느긋하게 정취에 젖어드는 일보이지

않지만 숨은 장치로 끼워두었다. 가족의 열렬한

피드백에 힘입어 연이어 둘째 날 일정도 올렸다.


만남의 첫 장소는 병산서원이었는데 서울 부산

문경에서 각자 출발한 터라 맨 먼저 도착한 우리

가족은 병산이 둘러싸인 아랫 강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일찍 도착하여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이런 순간은 언제나 좋다. 평생 자식들

모두에게 극진함의 끝을 보여주셨던 시어머님이

큰 아들 내외와 조카와 함께 도착하셨다. 칠대

장손으로 자라면서 사사건건 어머니의 관심과

지속적인 간섭을 받았던 시숙은 어머니와 지금

어떻게 됐냐 하면? 불구대천 원수가 되었다.

두 사람이 있는 장면에선 가족들 모두가 모종의 

설전과 설화를 기대하며 킥킥거리기 일쑤다.


불을 뿜는 두 용의 대결! 눈만 마주치면 서로를

못마땅해하는 사이가 되었다. 무슨 내용이건

가리지 않고 일단 서로의 의견에 반대한다.

자식에게 쏟은 지극정성의 열매는 필연적으로

씁쓸함 밖에 남기지 않는 현장이다. 여행 내내

멀찌감치 떨어져 다니던 것으로 봐서 앞으로도

변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여행 내내  다 큰 조카들과 가족들의 뭉침

흩어짐을 여유로운 기분으로 보았다. 가족 간에

좋은 건 웃음이고 상대에게 장단 맞춰주기였다.

불화가 없으려면 말조심 관심 조심이었다.


 병산서원에선 둘째네가 가족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역사적 의미를 프린터 해서 나눠주었다.

출입금지가 된 눈 앞의 만대루와 그 너머 병풍을 

두른듯한 병산을 보며 해설사도 떠나고 구경꾼

들도 다 떠난 자리에서 우리는 시원한 배를 나눠

먹었다. 새벽에 일어나 한 상자를 깎았건만 

19명의 가족이 먹으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성경의 어디쯤엔가 있는  메뚜기 떼가 생각났다.

하회마을 안동 간고등어 집은 고르고 골랐건만

여느 집과 똑같았다. 방안과 평상까지 백 명은 

족히 넘을 사람들 앞에 똑같은 고등어가 .

김밥집만 하더라도 수십 가지의 메뉴가 있건만

안동에선 간고등어 찜닭 헛제삿밥 등 굵직하고 

확실한 메뉴로 손님의 식성을 강제하는 특성이

있다.


날마다 병원을 이웃집 드나들듯 관절 치료를

위해 다니시던 어머니는 가족의 간청에도 불구

하고 카트 대신 활기차게 걸어 다니셨다. 여행이

결정된 후  한동안 집집마다에 전화를 걸어

당신은 다리가 불편하여 이 여행을 갈 수 없다

셨던 이야기는 온데간데가 없었다. 활기찬

발걸음에  호기심과 쉴 새 없는 이야기까지!

아이들은 여기저기에서 옆자리에 앉아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친밀감을 쌓아갔다. 예약할

당시에 여러 고택 중의 하나였던 숙소 임청각은

8.15 광복 기념일 날 대통령의 언급으로 우리의

여행일엔 엄청 유명세를 탄 것 같았다.

 

밤에는 등불을 손에 들고 저마다 침묵 속에서

각자의 염원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머물렀지만 상대의 속내는 서로 짐작도 못한

 자신 바라보기에 열중했다. 99칸의 집과

세간 토지를  팔아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며 목숨까지 내놓았던 임청각 집안 어르신

들의 고결함과 몸으로 겪었을 처절함에

정신이 감사함으로 숙여지던 시간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잠든 사이 우리는 ㄷ자로 지으진

고택의 안쪽 마루에 자리했다. 안동에서 과일을

상자로 사서 씻어온 동서네에 이어 아귀 포와

육포 술을 준비한 큰 시숙네가 모여 앉았다.

뜬금없이 큰 조카가 이 여행을 계획하며 일정을

진행하고 있던 나를 지목하며 넘치는 감사를

했다. 하지만 치사를 받을만한 것이 아님을

나는 짧게 설명했고, 이런 일은 즐겁고 쉬운 것

이라는 진심도 내비쳤다.

 


나이 듦으로 생긴 질환은 어떤 수술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완치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어머니는

병원에 출입이 적지 않을 것이다. 먼 훗날 우리 

어머니가 지상에서 이별할 때 자식들이 늙은

어머니의 하소연과 병치레에 넌더리가 쌓인

기억밖에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단 하루

라도 함께 모여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희희낙락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안동에서 함께 걸었던 장소와 길:병산서원/

하회마을/월영교/임청각에서의 하룻밤/

도산서원이었고

음식은:안동 간고등어/안동찜닭/매머드 제과/

임청각 소반 정식/헛제삿밥이었다.

군 복무 중인 손자들과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

4명을 제외한 가족들과의 늦여름, 초가을 여행!

모두가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며 서로가 찍은

사진을 교환하며 왁자지껄 했던 여행후기도 

끝났다. 정작 어머니의 감상은 어떠했는지?

묻지도 않았고 크게 말씀도 없으실 듯하다.

형제자매만큼 가까운 사이가 없는 것 같지만

구심점인 부모가 다 돌아가시고 나면 대부분

가족은 철저히 제 갈길을 가는 게 아닌가 싶다.

남겨진 날들엔 가족행사 대면 남을 수도 있다.


친하게 몰려다녔고,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파안대소를 했으며, 살뜰한 마음으로 나눈 음식

격의 없이 나누었던 이야기는 끝났다. 다들

제 집으로 돌아가서는 다시 배려와 조심의 경계

 아슬하게 넘나들며 숫제 침묵 속으로 빠졌다.


"한 부모가 열 자식을 기를 수 있으나 열 자식이

한 부모를 모시기 어렵다"는 옛말은 지금 우리

가족의 현실이다. 반면 따뜻함이 필요할 때

권미경 작가의 글 <아랫목>에 나오는  또한

기억하려 한다.

"눈물로 걷는 인생의 길목에서
가장 오래 가장 멀리까지
배웅해 주는 사람은 바로 우리 가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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