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희 May 11. 2018

솜방망이 꽃

보석의 확대 재생산


[3]

 병상에 누워계시던 엄마가 나의 방문 보인 행동은 놀랍게도 전광석화와 같은 빠른 몸놀림이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셨고, 삶을 정리하시며 내게 건넨 건 1 케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2]

 해외근무를 떠나기 전-하던  일 마무리와 정리 등으로 바쁜 어느 날 아파트에 도둑이 들었다. 그날 여섯 채 정도의 빈집이 순식간에 털렸다고 했다. 전동 드릴로 아파트 열쇠를 순식간에 부서 버린 거였다. 결혼식 때의 모든 패물은 그때 사라졌다. 요식 행위에 가까운 경찰의 수사는 나의 세세한 진술에도 불구하고, 그 후 한 번도 수사과정을 전해 듣지 못한 채 "사람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며 나는 떠났다.


[1]

 "이제 나의 보석은 밖에 내놓아도 안심이며, 스스로를 확대 재생산하며 대지자신의 넓혀가는 야생화들이다."

들솜쟁이 소곰쟁이로도 불리는 솜방망이 꽃의 성장을 나는 아침마다 둘러보고 있다. 주는 기쁨의 가치는 어떤 보석에도 뒤지지 않는다.



 이른 봄은 꽃샘추위로 바깥일 하기가 수월하지않았다. 갑갑한 마음에 집 밖으로 나가 사방트인 언덕배기에서 작고 여린 가지를 지닌 풀 서너 포기를 갖고 와서 바위틈에 심어두었다. 당시엔 이름도 알지 못한 채. 


 대체로 야생화는 정원으로 옮겨진 후 삼 년째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퇴비 부족으로 일반 꽃들은 발육이 잘 되지 않는 곳에 이 풀을 심어 두니 어둡고 긴 겨울을 보내고 튼튼하게 올라와 보송한 은색 털로 감싸져 자라났다. 날씬한 몸매의 여자가 털코트를 입은 모습이랄까?



 바위틈에선 작고 곧게 자랐고, 건조하고 햇빛 가득한 척박한 땅에선 좀 더 크고 풍성해졌다. 복수초를 시작으로 영춘화 생강 꽃 산수유 나리의 노란색 꽃들이 잦아들 시기 4월- 거미줄 같은 실타래 속을 뚫고 건강한 줄기에 안심(심지어 꽃말이 '안심하세요')하며 산형 꽃차례로 꽃들이 피어났다.


 쾌청하거나 비가 온 다음날 태양빛 속에 만개한 솜방망이 꽃을 보노라면 "진정한 보석은 바로 너야!"라며 혼잣말을 한다. 이 꽃의 털은 특수물질 분비선이 있어 선모로 유독물질을 분비하는 덕분에 꽃과 잎 줄기 모두가 흠 없이 깨끗하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지만, 그것보다는 꽃을 피워 충분히 즐기는 게 백번 낫다. 약용성분도 여럿인데 이뇨작용과 부종 요로감염 구내염 타박상 등에 널리 응용할 수 있다. 외국에서의 꽃말은 '안심'이지만 나는 우리나라

에서 통용되는  '그리움' 혹은 '산할아버지'가 더 마음에 든다. 훈훈하고 편안하며 한편으로 애잔하기도 하다.



 한 두 해를 두고 천천히 야생화를 지켜보면 얻게 되는 게 적지 않다. 야생에서의 모습과는 다르게 안착한 새 터의 새 주인과 교감하며 여러 모습 중 하나를 보여준다. 맑은 노랑을 한 달 정도 보석처럼 보여주다  이별의 신호로 꽃대가 꺾여 꽃잎을 훅 바닥으로 쏟아버리는 시기가

.


 씨앗 품은 꽃대를 잘라 햇볕에서 완전히 익힌 다음 원하는 만큼만 파종할 것이다. 성공 확률미미한 들판이 아닌 정원에선 수백 배 혹은 수천 배 번식이 가능하다. 다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없을 뿐! 씨앗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여기저기 양지바른 장소에 흩뿌리며 나는 집시처럼 걸어 다니고 싶다.



 5월 중순에 수확과 꽃씨 말림까지가 끝났다. 내일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고 한다. 오전 중에 원하던 곳에 씨앗을 묻고 손바닥으로 탁탁 두드려 주면서 내년을 기약하면 된다. 지구 상에 솜방망이 꽃의 종류가 3천 정도 된다고 한다. 생전에 몇 종류를 더 볼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어느 길을 가다가 우연히 스치더라도 서로 알아보면 좋겠다. 아련한 바람이다.


방금 꽃대에서 분리된 씨앗들-for 2019


매거진의 이전글 Tulip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