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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May 16. 2018

'부귀영화'와 '안분지족'

'한마음'에 달린 다른 열매


비에 세찬 바람이 끼어드니 나무들은 묵은 

가지와 아직도 붙어있는 낙엽들을 모두

털어내고 있다. 꽃들은 이리저리 휘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풀들은 스러졌다 일어

서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바람에 흔들려야

꽃이 피는법'이니 바람은 꽃에게나 내게

고마운 존재다.



내가 사는 곳의 오월은- 장미의 계절 이전에

모란과 작약의 계절이다. 겹겹이 귀한 자태를

내 보이는 모란이 있는가 하면 청초한 홑겹도

있다. 오래 내린 빗물은 모란꽃을 무겁게 

내려누른다. 묶어놓은 지지대에도 불구하고

비의 무거움과 '열흘 붉은꽃 없다'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꽃대가 힘을 잃으며 꺾이거나

꽃잎들이 후두둑 죄다 떨어진다.



동양 삼국(한. 중. 일)그림의 단골소재이며

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궁궐 곳곳에서 모란은

그들의 부와 권력의 배경이 되어주었다. 

반면 서양에서는 부귀영화의 상징으로서

보다는 peony의 아름다움에 포커스가

맞춰진 점이 문화와 시각의 차이인듯 하다.


집 곳곳의 모란은 자신의 일대기를  끝내며

절기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산에서 꾸기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기 시작하면 모란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작약이 그 다음을 준비

하는데. 꽃말이 부귀영화인 모란의 '영화'를

이렇게 끝내기엔 나의 입장에선 아쉽다.

꺾인 가지를 집안에 들여 물 속에 담궈둔다. 

서서히 수명을 다하며 편안히 만개중이다.



햇빛 속에서는 화려하게 사람의 시선을

붙잡던 꽃도 그늘진 집 안에선 초연하기만 

하다.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사는 '안분지족'의

정신마저 느껴지는 시간을 나와 꽃이 함께

보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오로지 모란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일 뿐이다.



모란이 사라진 자리는 금새 새로운 꽃들이

대신한다. 우리네 인간의 삶과 다를바 없다.

나에게 '부귀영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생각해봤다. 걸을 때도 풀을 뽑을 때도

나무 그늘에서도. 결국 내 마음의 상태라는

것에 방점을 찍었고, '안분지족'과 '부귀

영화'는 동전의 면 같은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서울엔 아침부터 비 난리가 났다

는데 이곳은 내일 부터 그럴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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