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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Sep 02. 2019

샤워기로 그림을 씻어가며 채색한 시간

언젠가 고색창연!


 날카로운 경보음에 놀라서 스마트폰을 보면 폭염이니 햇빛에 강한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경북 지역들은 바깥일을 하지 말라는 친절한 경고다. 내가 여기 사는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주소지가 서울이라며, 이곳 '여성관' 무료 문화강좌에는 공무원의 등본 확인으로 등록도 못하고 있는데.



 쾅! 쾅쾅

"무슨 소리지? 포수가 낮에도 총을 쏘는 거야?"

다시 스마트폰 경보음과 함께 떠오른 메시지엔 인근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거다. "지진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 집 뒷산이 무너지는 듯한 이 울림은 뭐야?" 비 오는 늦은 밤 총소리났었다. 다음날 아침 집 대문 다리 건너에 엄청난 크기의 고라니가 쓰러져 있다며 남편은

쪽으로 내가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면사무소에 연락을 고, 당일 엽총 사용 신고자 이름도 확인했다. 포수는  맞은 고라니를 찾지 못하고 철수했는데 연락 줘서 고맙다며 트럭에 싣고 떠났다. 생명을 위한 추모의 염을 할 새도 없이 벌어지는 일이다.


 조용하던 마을에 콩 꽃이 피고 꼬투리가 달리면 수시

기계음 총소리가 난다. 산과 산 사이의 울림은 그야말로 난리가 난 것 같다. 잠 못 마을 터줏대감과 님들의 불만 때문인지 소리는 곧 멈췄다. 다만 산 너머  마을에선 별 불평이 없는지 수시로 펑펑 터지는 소리가 메아리로

전해진다. '고라니는 영리해서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가짜인걸 알고 밤마다 농작물먹으러 온다던데!'


 이럴즈음 두 딸에게서 연락이 온다. 누가 어디서 바깥일을 하다 쓰러졌다거나, 밭 일을 나가 실종된 사람을 찾아보니 근처에서 사망했다는 걱정 경고 반이 혼재된 인터넷 기사들. 이미 팔뚝 여기저기가 모기와 숱한 종류 벌레에게 물려 심한 상태가 된 나와 J'자식 말은 들을 필요있다.' 마음으로 바깥일을 놓아버린다.



 30캔버스에 집을 둘러싼 해바라기, 늘어진 주홍 능소화를 스케치한다. 그리다 만 소매물 풍경화와 2개의 꽃그림 모두를 올 연말까지 완성할 거란 다짐을 하며 열심이다. 유화 물감에 사용 오일 냄새와 큰 캔버스가 차지한 공간은 더위를 더 가중시킨다. 햇볕에 내던지모든 그림판을 밖으로 둔다. 더 이상 못하겠다.


 종목을 바꿔 귤과 앵초처럼 생긴 꽃이 예쁜 민화를 그릴 생각이다. 을 먹인 한지를 정성스럽게 다린 뒤 먹으로 본을 뜨고, 밝은 색부터 하나씩 바탕을 입혀가니 마음이 고요하다. 분재를 심어놓은 도자둘, 그 도자기를 담은 청회색 더 큰 도자기까지.



 그러나 초연한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질 못했다. 연신 땀방울이 한지 위에 떨어졌고, 더위에 가 빙빙 돌린다. 마음이 급해지면서 일을 저지르고 만다. 하나를 채색하고 바로 옆의 것을 또 채색할 경우 번짐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물 조절 실패 서두름이 결합되어 번지고 지저분해지고 얼룩다. 여기에서 더 이상 계속하다간 이 그림을 어버리고 말 거다.


 일하 더워지고 지치면 나는 작년에 파 둔 지하수의 서늘한 물로 샤워를 한다. 조급했던 마음과 채색 욕심을 멈추고, 붓을 내려놓고, 일어나 중이던 그림을 듣고 목욕탕으로 간다. 샤워기의 물줄기로 두껍게 올려진 색과 얼룩 부드럽게 씻어낸다. 종이는 찢어짐 없이

연하디 연한 색만 흐릿하게 남기고 욕조에 걸쳐진 건조되고 있다.

"넌, 팔자가 좋구나"



 말려진 본은 가로와 세로, 앞 뒤로 꼼꼼하게 다림질하여 채색을 시작한다. 이번엔 더한 실수가 생겼지만 작업 시간 이상의 고침을 반복하며 완성에 이른다. 개의 도자기를 채색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한 시간실제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은 작업의 소요 시간보다 길었다. '포기'도  나쁘지 지만 완성을 염두에 두고 꼬박 닷새를 씨름이 그림엔  나의 여름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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