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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May 23. 2021

너를 기다리며 식재료를 바꿨어

브런치 AI의 요청

    오전 10시 52분에 쓰기 시작하면, 얼마 만에 한 꼭지의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작해본다. 브런치 AI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니, 난 한 계절 이상 글을 쓰지 않았었다. 일단 써보라는 권유였다. OK


    좀 전까지 나는 손에 카키색 물이 들 정도의 풀을 뽑다 들어왔고, 남편은 작업실 앞 공사장에 남겨진 모래를 운반하느라 포클레인 운전 소리가 요란하다. 정원사 부부의 오월은 하루하루가 분주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 년 후, 노인 병동에 계셨던 아버지-그날! 병원 보호자실 창밖에는 검은 새 두 마리가 오랫동안 춤을 추듯, 멀리 떠날 듯 내 마음속에 파문키더니, 몇 시간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올해 5월 내내 두 마리의 검은 새들이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저리도 노래인지, 울음인지, 서로를 향한 손짓인지 모를 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종종 아침의 긴 산책 시간이나, 정원 일 중에 그들을 의식할 때가 있다.



    1년 만에 GE가 집으로 돌아온다. 아직 며칠이 남았지만, 미리 '식을 하지 않는 사람의 식단'을 만들어보고 있다. 어제는 박대구이에, 동네 이웃이 준 청국장에  텃밭 상추를 한 소쿠리 넣어 비벼 먹었다.


    파프리카 씨는 털어내서, 햇볕에 말린다. 며칠  파종하면 늦가을까지 수확할 수 있으려나? 양파는 뿌리까지 잘라서 버섯과 감자와 함께 볶을 것이다. 피데기 오징어 한 마리와 양파 줄기, 파프리카를 썰어두었으니 카레만 녹여 끓이면 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함께 먹는 집밥엔 온갖 것이 다 녹아있다. 상대의 기호와  건강, 무엇보다도 편안한 배려 등이 어우러져 삶을 지탱하는 요소가 된다. 거창할 것 없는 재료로 만들 '오징어 파프리카 카레'를 준비 중이다.



    정미기로 빻은 쌀로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어, 단백질 풍부한 오징어를 넣은 카레를 함께 나눌 생각에 기쁘다. 재료를 손질하며, " 아~오월의 식재료는 어찌 이다지도 밝고 맑은 색을 지녔는가"였다.


    점심때가 되기 전 정원으로 나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까칠한 장미 주변 초화류들 정리하고, 정원의 뉴페이스 아이리스 주변에 햇볕이 들게 해야 하고, 청보라 매발톱 씨앗들을 수확해야 한다.


    (오후 2시)

    오전의 정원 일은  시간 흐름을 잊게 했다.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와, 불의 노력에 나는 그저 서서 주걱으로 재료들을 익힌다. 중국인들은 음식을 맛으로 먹고, 일본인들은 눈으로 먹고 한국인들은 배로 먹는다는 속설이 있다. -일단은 배가 불러야 한다. 열심히 일한  J에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봉밥에 카레를 듬뿍 붇는다. 콩나물국과 잘 익은 갓김치면 점심 준비 끝. 얼마나 서둘렀는지 콩나물이 국그릇 밖으로 달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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