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고 있었지만, 전문가에 의해 아이에게 객관적인 진단이 내려진 후의 기분은 묘했다.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삿짐을 한 구석에 밀어놓고 대충 사는 것처럼, 마음속에 해결해야 할 짐이 가득한데 애써 외면하며 하루하루 지낸 것 밖에 새로운 시작을 할 겨를이 없었다. 바쁘게 회사일을 처리하고 퇴근시간이 지나면 눈치를 보며 벌써부터 들썩거리기 시작한 엉덩이를 일으켜 아직 다들 남아 있는 사무실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환승역에 도착하면, 양쪽 열차가 방금 다 떠나는 바람에 절묘하게 사람이 거의 없을 때가 있는데, 그때가 유일하게 나의 우는 시간이었다. 감춰두었던 마음속 상처가 겨울바람에 시려왔고, 눈물이 상처 틈으로 쏟아졌다.
열차가 도착하면 다시 말간 얼굴로 올라타서 집까지 무표정하게 왔다. 아이는 여전히 혼자 앉아 말없이 책장을 넘기고,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시는 건지 아닌 건지 속마음을 내비치신 적 없는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으시고는 당신 댁으로 돌아가셨다. 남편은 늦게 퇴근하고,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아이 옆에 앉아 한참 말없이 앉아있곤 했다. 아가, 엄마 왔어. .... 아가, 그 책 재밌어? ... 아가, 저녁 먹었어? ... 씻기고 재우려고 같이 누워 토닥이다 대부분 같이 잠들었지만, 이 시기에는 잠도 안 왔다. 그런 날에는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이것저것 보곤 했다. 그러다, 강사 김미경 씨의 동영상을 봤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촌철살인 유머로 가득한 강의는 예전부터 좋아했었다. "저희 엄마는 우리 형제들이 찾아가면 꼭 물어봐요. 너네가 훌륭하냐, 엄마가 훌륭하냐. 그러면 꼭 엄마가 훌륭하다고 말해야 돼요. 안 그러면 큰~일나지. 엄마가 훌륭하지~. 이렇게 말하면 우리 엄마는 의기양양해져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그럼~! 당연히 니들 엄마인 내가 더 훌륭하지. 왜 그런 줄 아냐? 이 엄마는 너네 앞길에 있는 돌멩이 나무뿌리 지저분한 거 다 치워주며 너네들 넘어지지 않게 키워낸 사람이라 무조건 너희보다 훌륭한 겨~!" 나는 이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난 엄마다. 엄마는 자식 가는 길에 놓인 돌멩이와 다른 어려움을 치워주고 이끌어 주는 사람이다. 정신이 번쩍 났다. 아이에겐 엄마인 내가 있다. 기운이 펄펄 솟았다. 그리고 다음 날 회사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는 일 마무리되는 대로 육아휴직에 들어가기로 했다. 휴직 후 치료가 시작되고, 날씨는 더웠다. 매일 시원한 사무실에서 가만히 앉아 일하다가, 총격전이 난무하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육아의 현장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노라니 땀이 줄줄 흘렀다. 의사표현이 어려운 아이가 자주 분노 발작(tantrum, 강도 높게 떼쓰고 화내는 상황. 자폐 아이의 경우 의사표현이 어려워 자신의 뜻을 관철되지 않거나 예민한 감각에 뭔가 거슬리는 상황에 일어남)을 일으키니, 나도 미칠 노릇이었다. 한 바탕 폭풍이 지나가면 나는 가까스로 폭격에서 살아남아 참호에 던져진 병사처럼 넋이 나갔다. 그럴 때면 딸이 궁금한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딸, 뭐해?" "...................엄마, 나 너무 힘들어. 엉엉~ 내 아들이지만 얘가 뭘 원하는지 도대체 모르겠어요..엉엉.." 엄마는 잠시 가만히 듣다가 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힘들어도 정신 차려라! 니 애는 얼마나 더 힘들겠니. 네가 엄마고 니 아이의 온 우주다. 너밖에 품어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 네가 더 힘내야 하지 않겠니. 그렇게 나약하면 그게 무슨 엄마냐!.... 너 힘든 거 엄마가 다 안다. 기운 내라.... 아무리 아파도 아이는 아이다. 엄마가 힘들면 애는 더 힘들다..." 친정 엄마는 당신 가슴에 칼을 꽂는 심정으로 나를 모질게 단도리하신 거라고, 지금에서야 이 못난 딸은 헤아린다. 다행히 힘든 시간은 지나갔고, 엄마는 지금에서야 당시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막히는 것처럼 답답해서 한숨을 쉬곤 할 정도로 힘드셨다고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아이가 원망스럽거나 밉지 않냐고. 어떤 선배 언니는 내게 아이가 그리 되어 창피하냐고 물었다. 나는 버럭 소리 지르듯 나도 모르게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내 아이는 내게 부족한 아들이 아니라고. 내가 말해놓고도 어딘가 낯익은 표현이라, 저 말을 어디서 내가 들은 걸까, 곰곰 생각해보았다. 사람의 기억은 참 신기해서 아주 짧은 시간 스치듯 지나가며 본 텔레비전 속 말이 내게 필요한 그 순간 탁 튀어 나온다. 그 말도 그랬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가수 이상우 씨의 가족이 인간극장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집의 큰 아들에게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다. " 저는 사실 큰 애 때문에 둘째를 안 낳으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와이프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제가 참 큰 감동을 받았는데... 큰 애가 남들 보기에 부족하고 힘든 아이일지 몰라도 우리에게 부족한 아들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 둘째가 똑같이 자폐라고 해도 자기는 키울 수 있을 거 같다고..." 어미에게 부족한 아이는 없다. 아. 나는 뒤늦게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숙연해졌다. 아니, 한없이 어리석고 교만한 여자였던 나를 하나씩 가르쳐 가는 아이니, 아들은 내게 넘치는 아이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고 뒹굴며 나를 가르쳤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나니, 나는 길 가다가 도 우는 아이가 왜 우는지 단박에 알아채는 베테랑 아줌마가 되었다. 열 번 스무 번 말해도 답 없는 아이와 애써 말하고 대화하다 보니 폭풍 리액션이 몸에 배어 어쩌다 다른 집 아이들과 얘기하고 놀면 인기 만점일 때도 있다. 한 가지 더불어 고백하자면, 중학교 사춘기 소녀시절, 다른 아이들이 멋진 외모의 연예인에 열광할 때, 나는 가수 이상우의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하루 종일 그의 노래를 듣곤 했었다. 이제는 나이 먹은 아줌마지만 괜히 가수 이상우 씨와 공통점을 가진 게 뭔가 인연인 것도 같고, 그가 자폐 관련한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는 모습을 보며 나 혼자 마음의 의지가 될 때도 있다.(음. 주책 같지만, 뭐, 기분은 기분이니까 ^^)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견디고 나니, 이 세상 일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은 곧 지나가는 법이다. 가끔 몸과 마음이 지칠 때, 삼 년 전 나를 일으켜 세웠던 세 분의 이야기, 김미경 강사, 친정엄마, 그리고 이상우 씨 부인의 얘기를 떠올리며 나 자신을 추스른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의 말씀을 마음속에 붙잡고 의지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201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