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
음악과 영화와 책과 일상의 이야기-시작하며
'오늘'이란 단어는 완벽하게 균형 잡힌 모양이다.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완벽한 수직 좌우 대칭의 글자 '오', 가로선 다섯 개가 지나가는 '늘'의 평평한 이미지가 만나는 모습이 마치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에 반듯하게 서 있는 나무처럼 느껴진다. 그 나무가 바로 오늘의 나, 오늘을 살아가는 나이다.
내일을 알고 싶어 몸을 기울여 앞을 보려 하는 건 무의미하고 과거를 벗어나지 못해 주저앉아서도 안된다. 허허벌판에 서있더라도 똑바로 서서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그렇다고 비장하고 긴장하고 살자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충분히 느끼면 된다. 즐거우면 웃고, 슬프면 울고, 좋은 에너지는 받아들이고, 나쁜 에너지는 멀리 하여 나를 지키고, 주변에 nice하고 sweet 한 사람이 되는 것, 등. 이것이 내가 터득한 삶의 방식이다.
아이가 하루에 하루만큼 자라듯, 어른도 하루에 하루만큼 더 어른이 되어간다. 어렵게 삶의 방식을 익히게 해 주고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준 것은 그날그날 읽은 책과, 두 시간 남짓 본 영화와, 가슴에 훅 들어오는 음악과,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책과 음악과 영화와 사람이 있지만, 그날그날 나에게 공명한 이유는 그때 나에게 꼭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들과의 만남은 대부분 우연이었다. 늦은 밤 아이를 재우고 틀었던 텔레비전, 회사 연수가 일찍 끝나 혼자 들른 영화관, 출퇴근 길 또는 운전 중에 틀어놓은 라디오, 정심 시간이나 일이 안 풀리는 오후에 잠시 들른 회사 근처 서점, 지하철 안에서 다른 사람과 어깨를 이어 붙이고 앉은 좁은 객석, 아이 때문에 기웃대던 인터넷 서점.....
이 모든 것은 내 삶의 벗이 되어 각각의 에너지로 앙상한 묘목 같던 나에게 햇살과 물과 바람이 되어 나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을 키워냈다.
꽃과 열매가 맺히고 주변에 그늘을 드리울 제법 멋진 나무가 될 때까지, 앞으로도 오랫동안 '오늘의 나'와 함께 해줄 모든 벗에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