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시원이는 어디 있어요?
내가 요즘 일하러 가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는 “시원이는 어디 있어요?”다. 미팅, 회의, 발표회, 시상식, 촬영, 녹음 등 일이 있을 때마다 데리고 다녔더니 이제는 같이 없으면 이상한, 나보다 더 유명한 내 딸이다. 거래처 담당자나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내 딸의 이름을 부르고 안부를 물으면, 나는 아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팔불출처럼 딸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러다 보면 분위기가 한층 자연스러워지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업무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나는 MBTI가 대문자 I인 데다가 효율을 추구하는 T라서 평소 안부를 묻거나 일상을 소재로 가벼운 토크를 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인데 육아 이야기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말이 술술 나오니, 그런 면에서 시원이 덕을 아주 톡톡히 보고 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시원이도 35개월 인생의 많은 부분을 엄마와 함께 일을 하다 보니 나름 노련미가 보인다. 나는 항상 스케줄을 가기 전에 시원이에게 “오늘은 엄마랑 같이 일하러 가자~” 하며 오늘 할 일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데, 시원이는 그게 무슨 일이든 “좋아!” 하고 대답하고는 가방에 짐을 챙긴다. 가방이 가득 담긴 상자에서 오늘 가장 끌리는 가방 하나를 집어 들고는 장난감 노트북과 인형, 인형의 이불로 쓰일 손수건 같은 (결국 내가 들고 다녀야 할 짐이 될) 것들을 챙긴다. 내가 짐을 많이 챙긴다 싶으면 자기도 가방을 3개씩 챙긴다. 그러면 나는 내 짐에다 시원이의 나들이용 가방(육아에 필요한 것들이 들어 있는), 그리고 시원이의 장난감 가방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집을 나서게 되는데, 여기서 항상 열이 받는 포인트는 시원이가 열심히 챙긴 장난감 가방을 한 번도 밖에서 열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엄마를 똥개 훈련 시키듯 부려 먹는 악덕 아기지만 참 희한하게도 함께 밖에 나가면 의젓한 폼이 일품이다. 1~2시간 정도 하는 행사에서도 조용히 앉아 과자를 먹거나 때에 맞춰 박수도 잘 치고, 평소에 낯을 그렇게 가리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다른 이모 삼촌들(주로 담당자들)과 놀면서 엄마에게 일에 잠시 집중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을 준다. 또 촬영할 때는 촬영 보조 장비 같은 작은 짐을 들어주거나 간단한 심부름도 해주기도 하고, 의견을 물어보면 한 번씩 피드백도 해준다. 최근에는 “엄마 일 잘했어?”라고 물었더니 “정말 엉망이야. 아빠한테 다시 배워야겠어.”라는 피드백을 해주고는 재밌다며 하하 웃는 모습을 보며 궁뎅이를 콱 깨물어 주고 싶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새는 희한한 모습을 보면 억울하다가도, ‘애가 참 얌전하고 똘똘하다’며 칭찬을 받고, 시원이가 안 보이면 ‘왜 안 데려왔냐’고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이와 함께 일할 수 있는 편안한 환경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체감하곤 한다.
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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