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와 나

6화. 병행의 역사 ①

일과 영화

by 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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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영화


6화. 병행의 역사 ①


일과 영화


앞서 말했듯이 나는 영화를 시작한 이래 계속해서 뭔가를 병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다. 가끔씩 찍는 단편영화는 돈을 버는 일이라기보다는 빚이 생기는 일이었고, 연출이 아닌 스태프로 참여한다고 해도 페이가 많지 않았다. 단편영화 촬영 현장을 찾아 여기저기 지역을 옮겨 다닐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교통과 숙박, 식비에 드는 돈이 훨씬 많았기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내가 기술팀 보조 파트를 희망했더라면 조금 욕심을 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연출팀이라 촬영 날이 아니라도 프리 단계(사전 제작 단계)에 참여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원활하게 소통하고 회의하려면 최소 두 달은 그 지역에 살아야 했다. 장편영화 현장으로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했는데, 대학에서 영화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현장 경험이 많지도 않으니 그것은 먼 나중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단편영화 촬영만 해서는 생계유지가 어려웠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병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라고 하더라도 월세며 식대며 그리고 학원비까지, 한 사람이 먹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벌기 위해서는 풀타임으로 일해야 했다. 영화를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아르바이트가 단숨에 내 삶의 메인을 차지해 버렸다. 부산으로 터전을 옮기고 나서는 사진관에서 일을 해서 그나마 카메라와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지만, 하루 종일 사진 촬영을 하느라 에너지를 쓰고 나면 글을 쓸 체력이 남아나질 않았다. 처음 일했던 사진관은 작은 사진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부산 서면에 위치하고 있어서인지 하루에 100팀이 넘는 사람들이 와서 이미지 사진을 촬영했고, 두 번째 일했던 베이비 스튜디오는 하루 종일 3층 계단을 뛰어서 오르락내리락하며 아기들을 어르고 달래고, 조명을 옮기고 하느라 몸을 정말 험하게 썼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어리석었다. 그저 열심히 일할 줄만 알았지 요령을 피울 줄도 모르고 내 몸과 내 삶을 살피지 못했다. 시나리오 학원을 다니고 컴퓨터 학원을 다니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것이 아니라, 그곳에 쏟을 에너지도 남겨놨어야 했다. 그랬다면 조금 더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일하며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혹사하며 일을 하니 결국에는 몸이 망가져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허리 통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건강 악화로 부산을 떠나고, 4년이 지나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그전과 달리 꽤나 여유로웠다. 직장에서의 일은 6시 퇴근 전까지 생각하고 집에 오면 일절 떠올리지 않았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하고, 에너지를 아꼈다. 그럼에도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아서 점점 많은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그래도 마감 일정이 급박한 입찰에 갑자기 참여하는 게 아닌 이상 6시를 넘기는 일은 없었다. 남겨둔 에너지로, 퇴근 후에는 필라테스 같은 운동도 간간이 하면서, 시나리오 수업 과제를 하거나 영화 촬영 준비를 했다. 단편영화의 경우 보통 2~4일 정도 촬영하는데, 주말에만 촬영하거나 주말과 붙여 연차를 사용하면 직장 생활과 충분히 병행할 수 있었다. 또 직장이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여서 직장에서의 경험이 영화에 도움이 되기도, 반대로 영화에서의 경험이 직장에 도움이 되기도 해서 생각보다 궁합이 잘 맞았다.


직장은 생계유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중의 하나였고, 나는 꽤 오랫동안 부모님의 도움으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나리오 학원 수강생들을 부러워했다. 나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영화 필사도 하고, 작법서도 더 읽고, 시나리오 기획안도 좀 더 많이 적어 낼 수 있었을 거라며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직장에서의 경험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는 걸 느낀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업무 프로세스나 거래처와 소통하는 법, 업무 툴의 활용, 협업하는 방법 등 직장에서 배운 모든 기술과 콘텐츠를 만들었던 경험들이 정말 알차게 쓰이고 있다. 난 시나리오에 오롯이 집중하지는 못했지만, 시나리오만 적었더라면 몰랐을 세상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때는 적지 못했더라도 앞으로 나만의 경험들을 살려 적을 수 있는 시나리오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이제 내가 가진 이야기,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에 대해 생각한다.



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본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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