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영화와 사랑
7화. 병행의 역사 ②
일과 영화와 사랑
남편인 쭌과의 연애를 시작하자 내 삶은 ‘일’과 ‘영화’에서 ‘사랑’까지 세 개의 파트로 나뉘었다. 사적인 관계가 추가되자 일만 병행할 때와는 또 다른 어려움이 생겼다. 셋 중 어느 한곳에 할애하는 시간이 커지면 다른 곳에서 서운함을 토로했다. 특히 쭌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면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해 주기를 바랐다. 어느 정도냐 하면 데이트를 할 때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카톡을 주고받는 것도 싫어했다. 또 동거를 시작하고 나서는 저녁에는 일을 하지 않고, 자기와 TV를 보거나 산책을 하는 등 일상생활을 같이 보내기를 바랐다. 그래서 프리랜서 생활을 할 때에도 작업시간은 9시부터 6시까지로 규칙적인 일과를 보냈는데, 익숙해지고 나니 프리랜서에게 참 좋은 습관이다 싶었다. 일을 하는 이유 중에는 가족과의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한 것도 큰데, 일을 한다고 가족을 등한시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좋은 습관을 미리 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밤을 지새울 체력도 되지 않아서 낮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길러 놓는 것은 길게 볼수록 좋은 것 같다.
쭌은 점점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고, 함께하는 시간도 늘어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직장, 영화 쪽 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었다. 특히 영화를 함께하던 친구들은 내가 변했다는 말까지 했다. 딱히 내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 남자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늘자 나를 뺏기는 느낌이 들었나 보다. 지금은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그다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보고 변했다고 하니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뭔가 서운한 게 있었나 보다 싶어서 ‘내가 좀 더 잘해야겠다’며 속을 삭이며 넘어갔던 것 같다.
이후로 나는 누구 하나 서운하지 않게 밸런스를 골고루 맞추는 데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다 쭌과 살림을 합치고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모두가 쭌이 내 삶의 가장 큰 부분이 되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동의한 듯했다. 대구에서의 삶을 원하는 쭌을 따라 부산 직장을 그만둔 것도, 그래서 부산보다 대구에서의 영화 활동 비중이 늘어난 것에도 서운해하기보다는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이해해 줬다.
이런 부분들은 대외적으로는 평탄하게 보였다. 그런데 나는 온전히 내가 내린 결정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인해 내 주변의 상황이 바뀌는 게 썩 달갑지는 않았다. 물론 쭌은 앞으로 평생 함께 살아갈 동반자로서 중요한 사람이지만, 마찰이 있을 때마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상했다. 물론 결혼을 하면 반려자와 함께 서로 타협하고 맞춰가야 한다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활양식과 의사결정 방식이 낯설고 답답했다. 그래도 바꾸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것보다는 서로에게 맞춰 변해가는 것이 결국에는 서로에게 좋기는 했다. 바뀐 모습이 불편하고 나답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은 잠시뿐이었고, 의외로 좋고 편해진 부분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성 영화인으로서의 관점으로만 보자면 일과 영화만 병행했을 때와는 다르게,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생기자 유리 천장이 한 겹 덧씌워진 느낌이기는 했다. 특히 영화 작업에서 나의 활동 범위를 정할 때 남편과 논의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분이 그렇게 느껴졌다. 대부분 남성 영화인들은 가정이 생기면 먹여살릴 식구가 늘었다며 활동 반경을 넓히는데, 여성 영화인들은 식구가 생겼으니 오랫동안 집을 비우거나 가정에 소홀해질 법한 일은 줄여나간다. 배우자의 성향이나 가치관, 예술에 대한 이해도나 아내의 예술 활동에 대한 지지 여부도 예술 활동의 지속가능성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어떻게 보면 일반 맞벌이 부부와 크게 다를 것이 없음에도 여성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은 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창작 활동의 특성상 효율보다는 의미를 더하는 작업이 많다 보니 경제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작업도 간혹 있고, 수익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쭌도 초반에 내게 많이 했던 말 중 하나가 ‘그거 돈 받고 하는 거야?’라는 말이었고, 내가 일하러 간다고 하면 ‘잘 놀다 와~’라고 했다. 물론 재밌게 놀면서 일을 할 때가 많아서 잘 놀다 오라는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일을 일로서 봐주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 억울할 때도 많았다.
지금은 쭌도 영화인 아내를 둔 지 3년 차(연애까지 포함하면 7년 차)가 돼서 어렴풋이 감을 잡아가고는 있는 것 같지만, 가끔씩 ‘달력에 적힌 스케줄을 봐도 나는 네가 요즘 뭘 하는지 잘 모르겠어.’라고 하는 걸 보면 아직 멀었다. 그래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요즘에는 적어도 ‘회의를 왜 이렇게 많이 하냐고’ 이상해하지는 않는다는 것, 내가 일하는 현장을 궁금해하며, 전시나 상영 행사에 한 번씩 참여하는 등 조금씩 응원해 주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며 에너지를 조절하고 밸런스를 맞추는 방법을 터득했듯이, 남편과도 언젠가는 편안하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맘 놓고 했으면 좋겠다. 스케줄을 조정하는 그런 딱딱한 이야기 말고, 내가 재미있어하는 부분들을 공유하고, 작업을 하면서 고민되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의견을 묻는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언젠가는 남편이 진심으로, 나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일들도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남편이 내 영화의 팬이 되는 것, 그것만큼 확실한 지지와 응원은 없을 것 같다.
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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