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하거나 함께하거나
17화. 아이와 함께 일하기 ③
분리하거나 함께하거나
시원이가 15개월이 되고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나와 아기가 완전히 분리되는 규칙적인 시간이 생기자 새로운 뭔가를 시도할 수 있는 틈이 생겼다. 그렇게 다시 집을 벗어나서 ‘김현미’로서만 활동할 수 있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어린이집 보육시간 내에 모든 일을 수행하는 건 어렵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맡기고 일하기’와 ‘아이를 데리고 일하기’ 두 가지 방법을 번갈아가면서 사용했다.
‘아이를 맡기고 일하기’는 내가 경계를 하면서도 좀 더 선호하는 방식의 육아·예술 병행의 형태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남편이나 친언니, 엄마, 시부모님께 시원이를 맡기고 혼자 일을 하러 다니면 아기를 낳기 전과 똑같이 일을 할 수 있으니 몸도 마음도 훨씬 편하다. 시원이의 입장에서도 어린이집에 가거나 나를 따라가 불편한 환경에서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보다는 좋아하는 가족들과 편하게 노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방법은 가족들이 자투리 시간이 있다는 가정하에 사용할 수 있다. 그 말인즉슨 가족들이 자신의 쉬는 시간을 나를 위해서 아이 돌봄의 시간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가족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방식을 선호하지만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다는 양가감정이 항상 따라온다. 그리고 이 방식에는 부작용도 있다.
첫째는 시원이를 맡기기 전과 후에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기를 케어하려면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먹이고 입히고, 놀아줄 모든 것들의 짐을 싸면 자동차에서 카시트를 제외한 모든 공간이 꽉 찬다. 짐을 싸고 시원이와 함께 맡긴 후에, 일이 끝나면 다시 짐을 싸서 시원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서 정리한다. 그러면 일을 가기 전에는 준비할 게 많은데 짐까지 싸느라 힘들고, 일을 다녀와서는 피곤한데 짐정리까지 하느라 힘들다. 아기를 보내지 않고 우리집에 가족들이 와서 봐 주는 경우에도 똑같다. 오기 전에는 미리 청소도 싹 하고 먹을 것도 사놔야 되고, 가고 난 후에는 전투의 흔적을 치워야 하니 바쁘다.
두 번째 부작용은 가족간의 불화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양육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가족들의 마음에는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다. ‘자식이니까, 손녀니까, 조카니까’ 하는 마음들로는 한계가 있다. 나도 내 자식을 돌보는 게 힘든데, 다른 사람은 안 그럴까. 아직 남편인 쭌 말고는 돌봄의 문제로 다퉈본 적은 없어서 괜히 애먼 가족들을 미리 의심하고 경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가 계속 경계하고 조심하고 있기에 발화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다투는 것도 서로 배려하지 않고, 조심하지 않을 때 싸우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가족들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컨트롤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내 일을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가족들에게 의존해서 일을 하다 보면 나중에 트러블이 생겨 ‘이럴 거면 그만둬라. 이제 더 이상 돌봄 지원을 못 해주겠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당당하게 맞서지 못할 것 같아서. 당당하고 싶어서.
어렵기는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일하기’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런 이유에서다. 내가 내 일에 당당하고 싶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유아차에 기저귀를 가득 싣고 가서 분유를 먹이며 행사를 진행하고, 아이의 장난감을 조립해주며 미팅을 하고,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촬영했다. 일의 흐름과 아이의 흐름을 동시에 따라가는 일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원이를 고려해 편한 현장을 만들다 보면 참여진들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현장에서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힘든 건 나뿐이지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사람들은 모르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아이와 함께 일하는 여성은 우리 사회가 잘 모르는 이야기다. 그래서 일하고 싶은 엄마들도 도전을 두려워하고, 일을 맡기는 쪽에서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미혼이었더라면 의심하지 않았을 텐데, 아기가 있다는 이유로 수행 능력 여부의 의심받는 상황이 너무 웃기다.
내가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일을 해 보니 확실히 알겠다. 여성들은 아이를 낳으면 더 넓게 보고, 더 깊이 생각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단지 엄마들이 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힘든 이유는 아이가 아프거나 참관 수업, 운동회 같은 이유로 반차나 월차를 쓰고 회사에 얼굴을 비추지 않는 것이 업무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사회의 분위기와 아기의 밥을 챙겨주느라 시간이 부족해 덜 꾸미고 나타나면 자기관리가 부족해 보이고, 덜 전문적으로 보인다는 그릇된 외모지상주의 때문이다. 고정관념이나 편견 말고 지금까지 함께 했던 그 사람을 보자. 그래도 과연 할 수 없을까?
찾지 않으려고 하는 게 문제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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