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와 나

16화. 아이와 함께 일하기 ②

작업을 하기까지 넘어야 하는 산들

by 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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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아이와 함께 일하기 ②


작업을 하기까지 넘어야 하는 산들


다른 모든 예술도 그렇지만 영화 또한 작업을 할 때에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특히 시나리오를 적을때는 되도록 아무도 말을 걸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시나리오를 적을 때 흐름이 끊기면 작품의 흐름도 끊겨서 매끄럽지 못하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있으면 집중은커녕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 것부터가 어렵다.

‘갓 낳은 신생아 시절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잠을 자니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면 단언컨대, 아니다. 신생아는 2~3시간에 젖이나 분유를 먹기 때문에 오래 집중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빨리 먹고 재운 뒤에 작업을 이어가면 되지 않을까?’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또 내 대답은 ‘아니다’이다. 신생아 케어는 분유를 먹고 재운다고 끝나지 않는다. 하루종일 10번 내외의 수유에는 함께 동반되는 작업들이 있다. 수유 후에는 10분~20분 정도 아기의 등을 토닥이며 트름도 정성스레 시켜줘야 하고, 모유나 분유를 먹인 후에는 가슴에 남은 젖을 유축기로 짜내줘야 (공포의) 젖몸살이 없다. 또 분유 수유를 하는 경우에는 설거지와 소독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루 동안 사용하는 젖병을 쌓아 놓은 뒤에 저녁에 한 번에 처리 할 수도 있겠지만, 위생상 다른 설거지들과 섞이면 좋지 않고, 또 분유가 생각보다 기름지기 때문에 물로 대충이라도 씻어서 따로 보관해 놔야 한다. 거기다 신생아는 수시로 소변과 대변을 누기 때문에 하루에 10번 내외로 기저귀를 갈며 엉덩이도 씻겨줘야 하고, 소화기관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먹은 것을 게워내기도 잘 해서 빨래도 많이 생긴다. 목욕도 시키고, 잠을 재우기 위해 아이를 안고 흔들어주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육아만으로도 48시간이 모자라다. 아기가 밤에 통잠을 자게 되기 전까지 이런 생활 패턴을 유지하다가, 통잠의 시대가 열리면 좀 나아진다.


‘그러면 육퇴 후 작업을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또 날 수 있다. 하지만 아기가 통잠을 잔다는 것은 아기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아기에게 해 줘야 하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의미다. 아이가 기고, 걷고, 뛰기 시작하면 낮시간에는 집안일을 할 수 없다. 하루 종일 아이를 씻기고, 밥 먹이고, 놀아주고, 산책도 하고, 배변도 신경쓰고, 낮잠도 재우고, 간식도 먹인다. 여기에 아프면 두 배로, 입원하면 세배로 신경 쓸 일들이 많아진다. 이 시기에는 하루도 집이 깨끗할 날이 없어서 배우자와 싸우는 일도 많아진다. 잠시 변명을 좀 하자면, 엄마들은 집안이 개판이 되는 걸 못 본 체하며 아이랑 집에서 놀기만 하는 게 아니다.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전투를 벌인 흔적이 (남편의 눈에) 보기 싫게 남는 것이다. 집안이 어질러져 있을수록 전투가 치열했다는 뜻이고, 그런 엄마들에게 필요한 건 ‘수고했다’라는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육퇴 후에는 전투의 흔적을 치워야 하니 바로 작업을 할 수는 없다. 1~2시간 (소리를 내지 않게끔 주의를 기울이면서) 집안을 정리하고, 밀린 설거지와 빨래를 한다. 만약 아기를 잠들다가 함께 잠들었다면, 다음날 두 배로 밀린 집안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 오고, 그제서야 엄마는 퇴근한다.


‘요즘엔 자정이 늦은 것도 아니지. 새벽까지 안자고 TV를 보는 사람들도 많은걸. 그리고 원래 예술인들의 작업은 새벽에 많이 이루어지지 않나?’라고 한다면...

오래 기다렸다. 이제 그 입을 꿰맬 시간이다.^^



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본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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