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와 나

19화. 쭌 ②

내가 처음인 사람

by 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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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쭌 ②


내가 처음인 사람


남편 쭌은 책임감과 보호본능이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힘든 꼴을 못 본다. 울기라도 하면 자기가 못한 느낌이 든다며 더 화를 낸다. 표현은 경상도 사람처럼 무뚝뚝하고 거칠지만, 그 안에 담긴 말뜻은 참 따스하다. 연애할 때부터 제발 말 좀 예쁘게 하라고 잔소리를 해도 살아오기를 그렇게 살아와서 어쩌겠나. 표현 방법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남편의 말을 받아들이는 내가 좀 변했다. 남편의 말을 듣고 잠깐 욱했다가 그 안에 담긴 뜻을 곱씹어 보며 그냥 한 번 째려보기만 하고 만다.


마감을 앞둔 주말, 시간이 좀 부족해서 남편에게 시원이와 놀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하면서도 한마디 덧붙인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일을 해.”란다. 세상에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있담? 바쁜데 싸우기 싫어서 무시하듯 흘려듣고는, 카페에 가서 글을 쓰고 오겠다고 하니 시원이가 울먹이며 다가와 나를 잡는다. 전날 취재 때문에 늦게 들어왔더니 엄마 품이 그리웠나 보다. 결국 안쓰러움에 발목이 잡혀 방문을 훤히 열어놓고 작업을 하는데도, “엄마! 엄마! 어딨어?” 하고 부른다. 내가 글을 쓴다고 조용하니, 혹시나 몰래 나갔나 싶어 중간중간 확인까지 한다.

나는 아침밥을 먹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해서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한 번도 책상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평소 남편은 내가 집에서 하루 종일 작업하느라 아무것도 못 했다고 하면 “집에서 일을 하는데 세탁기 한 번을 못 돌릴 정도로 여유가 없다고?” 의아해했는데, 오늘이 드디어 그 모습을 보여주는 날이다 싶어서 점심도 책상에서 먹었다.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책상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니 쭌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가져다주고, 아기가 울며 떼를 써도 화내지 않고 조곤조곤 달랬다. 낮잠을 재워놓고 화장실 가는 척하며 나를 염탐하면서도 혹시나 집중을 깰까 말도 걸지 않는다. 그러다가 걱정이 됐는지 컵라면을 줄까 조심스레 물어온다.

쭌의 바뀐 모습에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 쭌은 나를 만나기 전부터 토목 현장에서 오래 일해 왔는데, 그곳은 업계 특성상 한번 현장이 결정되고 나면 타 지역에서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씩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우리 아빠도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목수셨는데, 비슷한 상황이었다 보니 엄마와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이사를 참 많이 다녔었다.

쭌은 나와 결혼은 하고 싶지만, 내가 동의한다 하더라도 우리 부모님처럼 함께 이사를 다니는 삶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나와 동거를 시작하면서부터는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직업인 시스템에어컨 설치 기사로 생업을 바꾸기까지 했다. 쭌은 자기가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40대에서 60대의 거친 아저씨들뿐이라고 했다. 살면서 영화인을 만난 적도, 예술 계통의 삶을 사는 사람과의 접점도 내가 처음이었다. 영화인들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어떻게 일을 하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몰랐다.

그런 말을 듣고 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남편에게 나는 그저 돈 안 되는 일을 한다고 용을 쓰고, 일을 한다고는 하는데 결과물은 딱히 안 보이고, 그래서 노는 것처럼만 보이는, 무늬만 영화감독인 한량에 가깝지 않았을까도 싶다. 그럼에도 아내니까 뭐든 잘 됐으면 하고 바라면서 지금까지 지켜봐 주고, 맞춰주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쭌이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요즘 시스템에어컨 설치하러 요양병원에 많이 가는데, 이제는 다른 산업들보다 노인들이랑 관련된 사업이 계속 커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네가 하는 배리어프리랑 이런 거를 좀 연결 지을 수 있는 게 있을까?”


나는 외쳤다.


“오빠, 그게 배리어프리야!”


그러고 나서 배리어프리는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고, 시니어, 임산부, 어린이, 외국인 등등 다양한 대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나이가 들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배리어프리와 노인은 뗄 수 없는 거라며 한참을 설명했다. 그리고 놀랐다. 쭌이 배리어프리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니!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안 두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배리어프리라는 단어를 외우고 있냐고 물었더니 쭌은 어깨를 으쓱하며 얘기했다.


“내가 너 하는 일에 관심을 안 가지고 있는 것 같아도 다~ 본다.”



“남편님, 인터뷰 하나만 해주실 수 있나요?

혹시 육아랑 일을 병행하는 나에 대해서 예전과 지금의 생각이 달라진 것이 있나요?”


“미안함과 고마움이 커졌달까…

일단 육아 후에 엄마 본인의 몸 밸런스가 깨지고 정신적 피곤함이 커진 거 같아서 안쓰럽고,

내가 이것저것 해 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미안함?”


역시, 조만간 둘째가 생길 것 같다.

시원이도 요즘 동생 갖고 싶다고 얘기하는데 잘 됐다.




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본 콘텐츠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4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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