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은 시각미술작가
22화. 아티맘 이야기 ③
김조은 시각미술작가
김조은 작가님은 2021년 아티맘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으로 직접 인터뷰한 엄마 예술인이다. 그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엄마 됨을 주제로 회화와 설치미술 작업을 하는 미술가이자 삼 남매를 키우는 강인한 엄마이기도 하다.
나와 같이 대구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이었지만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아티맘 프로젝트를 하지 않았거나, 작가님께서 내가 SNS에 올린 인터뷰이 모집 포스팅을 보고 연락을 보내지 않으셨다면 어쩌면 평생 마주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만났다. 그리고 한 번의 인터뷰만으로 끝났을지도 모를 인연을 붙잡아주신 것도 작가님이다. 바쁘신 와중에도 ‘뭐 하냐, 밥 먹자, 우리 같이 뭔가를 해보자’며 항상 먼저 연락을 주셨더랬다. 처음에는 인터뷰 이후로 계속 내 안부를 물어주시는 것이 좀 얼떨떨하기도 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흘렸던 일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거니와 인터뷰를 목적으로 한 만남이었기에 그 이후가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냐 하면, 나는 T다. 아무리 내적 친밀도가 높더라도 업무나 정보 전달, 질문 등의 목적이 없으면 별다른 연락을 취하지 않을뿐더러 어느 정도 사회화를 이룬 지금도 명절에 안부 인사를 보내는 것조차 어색해하는 사람이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최근에서야 작가님은 내가 T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과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셨는데, 조금 억울한 부분이 있다. 나는 T지만 육아를 경험하면서 아이를 향한 공감력이 급격히 상승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작가님과 만나 대화를 나눌 때만큼은 거의 모든 이야기에 공감했기 때문에 F에 가까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무튼 작가님은 모르셨겠지만, 작가님께서 하드 캐리해 주신 우리의 만남은 지금까지도 내게 힐링과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내가 육아나 작업 때문에 볼멘소리를 하면, 작가님은 언제나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괜찮다, 잘한다, 멋지다’ 말해주시며 내게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신다. 스스로도 확신이 없고 주변의 모든 상황이 힘들게만 느껴져 압박감으로 다가오던 그 시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조은 작가님의 ‘우쭈쭈’ 덕분이다.
아래의 인터뷰는 작가님을 처음 뵀을 때의 기록이다.
다시 한번 읽어보니 그때의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대로 느껴진다.
그리고 작가님의 손이 얼마나 따뜻했었는지도 다시 한번 느낀다.
Q. 전 주변 사람들한테 여러 호칭으로 불려요. 그중에서 ‘작가’나 ‘감독’은 제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해 주는 호칭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엄마’라는 호칭은 저라는 사람의 색채를 지우는 말같이 느껴지는 거예요. 제가 주체가 되는 호칭이 아니라, 다른 사람… 그게 제가 사랑하는 아이이긴 하지만, 누구 엄마라는 말은 저를 표현하는 대신 누군가의 무엇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제약처럼 느껴졌어요. 엄마로서 하면 안 되는 일들과 엄마로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생겨 버리는… 저를 꽁꽁 싸매는 기분이라 사실, 엄마라는 호칭이 조금 밉게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A. 저도 같은 생각을 했었어요. 저도 엄청 바쁘게 살았고, 또 아기를 가지면서 강의도 못 하고, 작업도 못 하고, 제 일은 올 스톱이 된다고 생각을 해 버리니까 엄청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미운 게 아닌데 계속 힘든 소리를 하다 보니 미안한 마음도 생기고, 또 밉고 힘든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본인이 더 힘들잖아요.
그래서 ‘원래의 나’와 ‘엄마라는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고, 두 정체성 사이 밸런스를 건강하게 맞춰가 보기로 했어요.
그 뒤로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면서 한 걸음 성장할 수 있었죠. 그전에는 저도 현미 씨처럼 ‘이 아이 때문에~’ 이런 소리를 좀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도 육아할 때 작업할 시간이 없어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셋째를 가졌을 때는 ‘왜 또 임신을 했냐’부터 시작해서 ‘너는 왜 배 꺼질 날이 없냐’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셋째를 임신하면 안 되는 건데 내가 임신했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시기였는데 몸도 힘들지만 마음이 너무 힘드니까 뱃속에 있던 아이가 6개월쯤 됐을 때 그냥 숨을 거뒀어요. 스스로. 근데 그러고 나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죄책감도 너무 많이 들고…
그런데 아이를 잃고 우울증이 심했던 그때, 작업을 통해 치유를 받았던 경험이 있어요. 한지로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든 다음에 다시 하나하나 구멍을 내며 소멸시키는 작업이었는데요. 사람도 일절 만나지 않고, 혼자서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 친구들이 지금 네가 이렇게 만들고 쌓아놓은 배냇저고리로 전시를 한번 열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봉산문화회관에서 전시를 열고 전시장 당번을 서고 있는데, 어떤 분이 한참을 안 나오시는 거예요.
제가 가까이 갔더니 배냇저고리를 보면서 이 작품이 뭔지 모르게 슬프다는 거예요. 제가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작품의 해설을 듣지 않고도 작품 속에서 제 감정을 읽으신 거예요. 그 순간 제 마음을 이해받은 기분이 들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이래서 내가 작업을 하는구나. 내가 이런 힘으로 작업할 수 있겠구나.
그 전에는 바다 그림도 그리고, 설치도 하고, 재밌게 작업을 했었지만
이 작업에 대한, 예술에 대한 어떤 진정성에 대한 고민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그냥 ‘내가 전공을 했고 내가 하는 일이 이거다’라는 생각만 했는데 그날 이후부터는 ‘공감’이라는 개념이 마음속에 들어왔어요. 사람은 공감을 통해 힘을 얻고 치유를 받더라고요. 제 작품이 저만의 개인적인 이야기였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겐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걸 알고 나니까 감사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죠.
지금 제가 하는 일이랑 현미 씨가 하는 일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금 현미 씨가 하는 활동은 다른 누군가를 위한 일인 동시에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이란 게 느껴져서 손을 잡아주고 싶었어요. 현미 씨한테서 그때 내 모습이 겹쳐 보여서.
Q. 엄마가 된 후 예술 활동에 제약이 많이 생기고,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이 힘들어요. 주변에 이런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 많은데도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래서 혼자라는 기분이 들었고요. 이런 시기를 지나올 때 작가님께는 주변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있었나요? 작가님도 혼자 그 시간들을 견뎌내셨다면, 그때 어떤 고민을 하셨고 그 고민을 통해 어떤 답을 찾으셨는지 궁금해요.
A. 저는 시댁도 멀고 친정도 멀어서 사실은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했어요. 아이 아빠가 좀 도와줄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아이 아빠도 아빠로서 성장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육아는 제가 맡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무척 힘들었죠.
그리고 애가 하나일 때가 더 힘들었어요. 친정어머니도 그렇고 시어머니도 그렇고 “됐다. 너 때 나는 너희들보다 더 했다.” 계속 이런 말씀만 하시고. 중간중간 음식을 싸 주시며 도움을 주셨지만, 상황상 제가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케어해 주실 수는 없었어요. 친정어머니는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시거든요.
그전의 작업들은 지구력도 많이 필요하고, 작업에 녹여내야 되는 시간도 많았어요. 어떻게 하면 육아와 살림, 또 제 작업을 병행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고, 절충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러다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닐 만큼 성장하고부터는 간단한 작업들을 할 시간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물론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았어요. 뭐든지 갑자기 껑충 뛰기는 어려우니까, 저에게도 도둑발 하는 시기가 분명히 있었어요.
열심히 했고 지금은 균형이 잡혔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한 답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시대 상황에 따라서도 다를 거고.
그런데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있다면, 진짜 나를 찾는 것 같아요.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으며 내가 줄곧 괴로워했던 이유는 ‘나를 잃을까 봐’였고, 조은 작가님께서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 한 가지는 ‘진짜 나를 찾는 것’이었다. 예술가의 작업이란 나를 통해 바라본 세상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 그렇기에 나를 잃으면 작업을 할 수가 없는 것이고, 아이라는 우주는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어 무력감 또한 컸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끝까지 나를 지킬 수 있을까?
내게 그런 힘이 있을까?
내게 그런 가치가 있을까?
조은 작가님을 만나고, 나는 비로소 내게 대답할 수 있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김조은 작가님 인스타그램
일상 @artist_joeun
작업 @artist_joeunkim
글. 김현미
교정. 교열. 윤문. 김지현 rlawlgus2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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