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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Nov 08. 2023

처갓집이 좋은 남편

이슬이 때문은 아니겠죠?


"오늘 유치원 끝나면 키즈펜션 가?"
"응. 유치원에서 점심 먹고 기다려. 바로 갈게."
"나 오빠가 만든 잠자리하고 갈 거야."
"시율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날아가고 싶은 시율






 몇 해 전부터 말로만 ‘가자 가자’ 외치던 여행이, 남동생 부부의 ‘곗돈 통장 개설’과 함께 시작된 지 어느덧 3년에 가까워진다. 첫 여행은 삼척, 두 번째 여행은 영덕을 기획했으나 취소되었고, 이번에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강릉 키즈풀빌라로 정했다.

부모님, 우리 가족, 그리고 동생네 부부. 3대가 함께 하는 여행이 가을의 언덕에서 물들기 시작했다.       


11월 초의 강릉은, 따스한 온기와 시원한 단풍의 살랑임으로 우리 맞이했다.  공간에 모인 우리는 서로가 챙겨 온 것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자식들 먹이겠다며 장날 송이버섯을 사 온 아빠,

아이들 먹일게 마땅치 않다고 소고기를 준비한 엄마,

방어, 대게, 무늬오징어 등 제철 해산물을 포장 동생,

거기에 우리가 보탠 소소한 몽글몽글 에그타르트.

    

각자 개성 강한 음식들은 초록빛을 닮은 이슬이와 어우러져, 함께하는 맛을 상승시켰다.

‘참이술, 아니 참이슬.’     


초록빛 소주병에 비친 남편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런 그를 보며, 짧은 웃음을 지어 보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아이들은 온수풀 수영장에서 자유로움을 한동안 만끽했다.     


술에 취한 듯, 사람에 취한 듯.

우리의 가을 여행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다음날 아, 엄마의 장난 섞인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니, 이것들이 취했으면 지 마누라 옆에서 자야지 왜 다들 내 옆에서 자는 거야!"


이층으로 되어 있던 그 공간에, 기분 좋게 취한 남편과 남동생은 그날 새벽 화장실을 다녀오며, 원래의 자리가 아닌 1층에서 주무시는 엄마 옆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잘 때 나를 안고 잠드는 그가 그날은 그러기 이전에 옆에 있던 그녀가 장모님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자리를 찾아갔다는 엄마의 말에 음을 참을 수 없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아내인 나는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남편과 동행하는 친정행이, 사실 달갑지 않았다. 술잔 안을 아슬아슬 넘나드는 맑은 물처럼 과한 즐거움에 취한 그의 위태로움이 나를 옥죄었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작은 이벤트로 돌아오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술은 포기할 수 없다는 그는 여전히 천진난만하다.     




30여 년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던 남녀가 어느 날, ‘결혼’이라는 명분 아래 삶의 방식을 통일해야 한다. 사랑이 그득 할 땐 문제가 없던 그 방식은, 익숙함과 함께 서로의 방식을 강요하기 시작했고 ‘네가 맞네, 내가 맞네’ 다투다 지쳐 결국 포기하게 된다. 그 서늘함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틈을 만들었다.


진절머리 나 보지 않았던 그 틈에, 어느 날 '이해'라는 거리가 생겼다.   

  


외롭게 자란 그는, 많은 가족들 사이에서 격 없이 오고 가는 시간을 그리워했다.

엄격하게 자란 그녀는, 격과 틀 안에서의 자유로움에 편안함을 느꼈다.     


그녀는 치열하게 싸우다 지쳐 벌어진 간격에서야

그의 맑음을 보았다.

그의 행복을 보았다.

그의 외로움이 옅어지는 것을 보았다.    

 

오늘에서야, 초록빛 이슬이가 달리 보였다.     








“이번 여행 술 많이 먹었는데 머리도 맑고 너무 좋아.”
“여보가 즐거우면 됐지.”
“다음에는 온천여행 가자고 할까?”
“또 가?”     



본가보다 처갓집을 더 좋아하는 우리 집 남자는,

다른 집 남자와 다름은 확실하다.


난 벅찬 매력을 가진 남자와 살고 있다. OO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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