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사회성

그 무게

by 김혜민


사회성이 있어 보입니까? 없어 보입니까?


선생님과 주고받는 메시지에 시후가 살짝 곁들인다. 끝맺음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주고받은 그 창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다.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이야기 나누기 보다 선생님과 귓속말이 즐겁고,
예측할 수 없는 친구의 마음과 놀이보다 매뉴얼대로 척척 쌓아 올리는 규칙에 만족하며, 정답이 딱 떨어지는 수학 연산 풀이가 더 좋은 시후다.



걱정이 앞서 3살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부터 약처방을 위해 어제 병원을 방문했을 때까지 의사가 강조하는 것은 사회성이다.

그동안 나에겐 ‘미칠 사회성’이었다.


‘친구와 접하는 기회를 많이 제공해 주세요.’

라는 명령 같은 의사 말에,

아이에게 주기적으로 친구와 만남을 제공한 적도 있다. 그리고 나는 이 미련한 짓을 때려치웠다.




여느 때와 같이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고 자연스러

놀이를 제공했던 그날, 아이가 사라졌다.

옷장 문이 덜컹덜컹 흔들린다.

그 속에 숨어 발로 쿵쿵 치는 소리였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문 사이로 흔들리는 눈빛이 있다. 그 작은 눈망울엔 불안과 원망이 가득했다.

‘아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날 이후 난 이 지긋지긋 만남을 그만뒀다.



물론, 치료를 그만 둘 순 없었다.

그러나 주 5일 빼곡히 돌아가는 스케줄에 주말까지

아이를 수업 같은 이 놀이에 넣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사회성에 가장 좋은 환경을 고민했다.

정답은 늘 가까이에 놓여 있는 법.

하루 중 가장 반짝반짝한 시간에 많은 또래와 적당한 시간 섞이는 곳, 유치원이다.

사회성은 선생님께 얹혀가기로 했다.

그리고 마음에 짐을 조금 덜어낸다.




매 학기 ‘개별화육 회의’를 진행한다.

발달영역과 누리과정 영역으로 세분화하고,

한 학기 동안 아이에게 필요한 부분을 학부모와 유치원이 논의, 계획을 세워 실행한다.

그렇게 시후는 3년의 시간 동안 특수교사와 담임교사 아래 세심한 케어를 받았다.

첫 시작은 ‘또래와 눈을 맞추고 상호작용 할 수 있도록 일과 중 애정훈련 제공’이었다.

서류만으로도 따스한 살이 전해져 미소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였을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부터 집에서 새로운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엄마! 간질간질해주세요. 시후 안아주세요.”

7살 큰 형님이 된 지금도 잠자리에 들 때면

“엄마 사랑해. 시후 뽀뽀해 주세요.”라며

나와 눈을 맞추고 진심 어린 애정훈련 중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진심 어린 잠자리 독립을 원한다.

독. 립.

지난 3년의 기록(개별화교육)


최근 마지막 개별화교육 평가서를 받았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에 시작된 눈물은,

서류 속 담긴 선생님 마음을 확인하고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일부를 가져온다.

사회성이란 또래와의 상호작용이 가능한가를 묻는 발달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또래와 함께 한 공간 안에서 규칙을 지켜 자신의 역할을 다 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게 중요할 것 같음.
이 초점에서 시후의 사회정서 발달 영역을 본다면 또래와 갈등 상황 없이 자신의 놀이를 즐겁게 하는 학급의 한 구성원의 역할을 다하는 어린이로 관찰됨.


그동안의 ‘미칠 사회성’의 틀에 갇혀 끙끙 대는 나에게 선생님이 전해준 편지 같았다.

'어머니, 시후 진짜 잘하고 있어요.'라고 말이다.


앞으로 시후가 살아가는 삶에

‘외로움’이란 친구가 동행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렇게 이쁜 마음에 상처라는 녀석이 들어온다고 생각이 들 때면, 아린다.

그렇다고, 힘들어하는 아이 등을 떠밀며 다시 그 속에 밀어 넣고 싶지는 않다.

삶 속에서 시후를 위한 타인과 섞여 사는 방법을 민하고 행하려 한다.




일반적 사회성을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우린 실패일까요?

사회적으로 정의 내린 그 사회성에 부합하지 않는 내 아이가, 살기에 아직 힘든 세상입니까?

그 사회성, 꼭 필요합니까?


다름을 인정해주는 시선 하나가 절실합니다.


사진출처 _ 픽사 베이 &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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