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장통

조리원으로 퇴근합니다

외로움, 삶의 경계에서

by 김혜민


임신 38주 차, 뙤약볕이 내리쬐는 7월이다.

여전히 운전대를 부여잡는다.

핸들과 맞닿은 배로 답답함을 느끼는 뱃속 둘째, 언어수업 가기 싫다고 뒷좌석 카시트에 앉아 뻥뻥 차는 첫째, 그 공간의 난 안쓰럽기 그지없다.


콕콕 쑤시는 통증은 허리를 타고 올라가 명치에서 울렁이는 더부룩함과 만난다. 곤욕이 따로 없다.

먹는 것조차 일처럼 느껴졌고, 눕고 싶어도 쉴 수 없었다. 설상가상, 아이는 센터에서 이쁘게 고이 드러누웠다. 수업 거부.


볼록 배만 올라온 내 몸뚱이는 첫째의 힙시트나 다를 바 없었다. 무거운 배를 끌어안고, 발버둥 치는 아이를 들쳐 메고 나오는 일은 부끄럽기보다 처참했다.

그 길로 산부인과를 달려가 유도분만 날짜를 잡았다. 버거워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의사도 안쓰러운지 주말을 보내고 바로 진행하자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런 나의 모습이 탐탁지 않은 사람, 그는 불쾌함을 표했다.


유도분만 꼭 월요일에 해야 해?
다음 날 해도 되잖아.
그날 회의 있다고.


난 꼿꼿이 서, 굽히지 않았다. 아니, 굽힐 수 없었다. 더 이상 지속할 자신이 없었다. 강하게 밀어붙였고 월요일 아침, 전투적으로 병원으로 갔다. 첫째 걱정으로 단시간 내에 끝내야만 했다.


“산모님, 힘 그만 주세요. 이미 나왔어요.”


그렇게 나는 한번 준 힘에, 둘째를 만났다.

진통 따윈 내게 사치였다.


임신 중 혹사시킨 몸은 예상대로 회복지 못했다. 결국 시어머니께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집 앞 조리원으로 일주일을 기약으로 들어갔다.

한 공간에 있는 출산 휴가 중인 남편, 시어머니, 그리고 첫째. 불안이 엄습한다.


입실 첫날, 남편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애가 엄마를 너무 찾아. 빨리 집에 왔다가.”


서운함보다 아이가 눈에 밟혀 안 갈 수가 없었다. 둘째를 조리원에 맡기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때가 출산한 지 3일째 되던 날이다.

둘째에겐 엄마는 항상 출장 중이었다.(미안해)


늦은 오후 다시 조리원으로 퇴근한다.

홀로 뚜벅뚜벅 걸어오는 그 길, 럽다.

초라한 나, 나는 누구인가.


천국이라던 그 조리원은 내겐 지옥이었다. 적막하고 낯선 그곳, 홀로 침대에 눕는다.

주변엔 남편의 케어를 받는 산모들의 다정한 소곤거림이 흘러나온다. 약한 방음 덕분에 모든 소리가 공유된다. 그리고 내 시선이 멈춘다.


오른쪽 끝 커다란 창,

두터운 커튼과 그 끈을 붙잡고 있는 봉.


‘저 커튼봉은 내 몸의 하중을 지탱할 수 있을까.’


무심한 하루의 끝에 우연히 올려다본 시선이,

삶의 끝자락까지 가는 것은 순간이었다.

막을 새도 없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넘쳐흐르는 서러움에 눈물을 토해낸다.


출산 후 호르몬의 문제였을까,

가족이 있음에도 찾아온 깊은 외로움이었을까.


피부가 찢겨 쓰라릴 정도의 서글픔이었다.






5살, 누구나처럼 설렘을 안고 유치원을 갔다. 그리고 이내 부딪혔다. 가기 싫다고 주저앉은 아이, 매일 들려오는 부정적 피드백. 결국, 항복하고 특수교육지원센터로 향했다.


“특수교육대상자 신청하러 왔어요.”


그리고 준비 없이 그날, 모든 절차를 밟았다. 아이는 나와 분리되어, 검사실로 들어간다. 네모반듯한 아담한 작은 공간에 마주 앉은 선생님과 오랜 시간 무언가를 열심히다.

창문의 작은 여백을 통해 바라본 아이의 뒷모습에 뜨겁고 맑은 무언가가 뺨을 타고 내려온다.


이 여린 녀석이 이른 나이에 겪는, 보통과 다른 경험에 안쓰러움이 가득이다. 지금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미안함의 눈물 외엔 어떠한 것도 없었다.


오전부터 시작된 일과는 저녁 6시가 넘어서야 마무리가 됐다. 우린 녹초가 되었다.

헛헛하다 못해, 가슴이 휑하다.

무리였던 스케줄에, 아이의 각성은 피로감과 불안함으로 하늘 모르고 치솟는다.


어둑어둑해진 저녁, 쓸쓸한 바람과 적당히 화려한 네온사인이 나를 가라앉힌다.

검사가 끝나 신이 난 건지 피로감에 회로 이상이 생긴 건지 모를 치솟는 각성. 그 복잡한 거리 한가운데 주저앉아, 아이를 있는 힘껏 안는다.


조절 힘든 아이의 각성을 낮추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렇게라도 난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던 것일까.


기댈 곳은 아이 외에 아무도 없었다.



만신창이가 돼서 돌아온 집, 느낌이 좋지 못하다.


“내 말대로 어차피 신청할 것을. 이것도 내가 다 알아본 거 아니야.”


아이문제에 매번 이런 식이었다. 인터넷 어디선가 듣고 와서는 아는지 모르는지 테스트하고, 너는 아이에게 하는 게 무엇이냐는 둥 비아냥.

그렇게 단어만 툭 던지고 사라졌었다.


"특교자 알아?”


상관의 지시처럼 던진 말에, 알아보고 절차를 거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본인 덕분이었지 않냐며 나불거린다.


우리 사이에 적당한 애정이 있었을 때는 치열하게 싸웠다. 아이문제에 항상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 숨어 이러쿵저러쿵 내뱉는 모습에 격렬히 반응했었다. 그럼에도 여전한 그의 태도에, 결국 묵언과 함께 고립됐다. 도대체 되지 않던 그 대화에 불필요한 에너지 따위를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그 후 찾아온 무력감은, 나를 집어삼켰다.


정신없는 등원시간을 보내고 운전해 돌아오는 차 안에선 오직 한 생각뿐이었다.

‘고통 없이 사라지고 싶다.’

그리고 흘러나온 ‘엄마의 꿈’.

울렁이는 눈물에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었다.


린, 엄마의 꿈 中
사는 게 조금 팍팍해. 살수록 모두 어려워.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은 맘인데
엄마 난 잘 안돼. 어른으로 살아가는 일.






느린 아이를 돌보는 일, 참 쉽지 않다.

그러나 내게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서있는 그였다.

가끔은, 과연 목표가 같긴 한 걸까 의심스러웠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부모만 느끼는 내 아이의 이른 남다름.

우리는 이내 경주마가 된다. 오직 앞만 주시하고 달린다. 살짝 고개만 숙여도 보이는 코앞 돌부리를 미리 예방치 못하고 온몸으로 구르고서야 아픔을 인지한다. 그럼에도 무릎 털 겨를도 없이 일어나 다시 달린다. 애쓰는 작은 아기 말이 함께니깐.


그렇게 현실을 부정했던 난,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에 온전히 슬퍼하지 못하고 몰입했다. 그리고 여유 없이 달리던 어느 날, 외로움이 찾아왔다. 그 외로움은 나를 가두고 이내 무력함으로 주저앉쳤다. 이렇게 일련의 사이클 안에 다람쥐 쳇바퀴 돌듯 굴러갔다.

무한 사이클 안에서 삶을 놓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치열하게 그 트랙을 돌고 있다.

이윽고, 다가올 희망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어디선가 치열하게 살고 있을 나와 같은 당신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안아준다. 그리고 살며시 이야기한다.


당신 참 잘하고 있습니다.



커튼을 붙잡고 모든 것을 쏟아내던 날,

고통이 끝났다는 생각에 이내 후련해진다.

그동안 고생했어. 이제 쉬자.
어미로서, 딸로서 그리고 아내로서.

그리고 결심의 손길이 나를 이끌어 뚜벅뚜벅 창문 앞에 섰을 때, 너를 보았다.

회색빛 건물 끝자락에 매달린 작고 빨간 너.

너로 인해 나는 다시 주저앉아 모든 것을 토해낸다.

네가 나에게 준 강력한 시선,


놓지 마세요.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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