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장통

협의이혼

증오, 측은지심을 품은

by 김혜민


위 당사자 사이에는 진의에 따라
서로 이혼하기로 합의하였다.


평소와 달리, 우린 지나칠 정도로 차분하다.

이 편안함은 무슨 감정일까.

그도 나와 같이, 이혼의 무게를 홀로 예습했을까.


치열하게 미워했다.

그리고 뜨겁게 사랑했다.

그러나 감당하기에 벅찼다.


우린 누구나와 같이, 일상에서 작은 서운함이 켜켜이 쌓여 갔다. 그 차곡차곡은 어느 날,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을 키웠다.

그 하나하나를 간과했던 것이다.





남편은, 순한 사람이다.

그러나, 기분 좋게 시작되는 술자리의 끝은 결코 순하지 않았다. 특히, 나에게는. 4년 전 원망의 화살은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게 넘어왔다.


'이 사람은 나를 왜 이렇게 미워하는 것일까.'


이해하려 했던 시작은 까맣게 잊고, 치열하게 맞대응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를 위한 형식적 화해는 일련의 절차였다.

그런 그가 두려웠고 나는 미소를 잃어갔다.


반복되는 일상, 해결되지 않던 문제로 나는 남김없이 다 타버렸다. 잿더미 속 남은 작은 불씨, 아이들이 다가와 후후 불어 다시 불길이 살짝 올라오지만 이내 힘없이 쪼그라든다.


차라리 양동이를 가득 채운 물로 남은 불씨를 다 꺼버리고 전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동그랗게 말아 올린 빨간 입술의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럴 수 없었다.


"나, 병원 다녀야 할 거 같아."
"무슨 병원?"
"정신과. 아이병원 갈 때 약 타서 먹을까 봐."
"일단 상담부터 받아보자."


남편은 혹시나 있을 불이익을 운운하며 병원을 극구 말렸다. 그리고 친히, 상담센터를 예약해 줬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본인의 의한 고통임을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예약한 날이 다가왔다. 정신없이 등원시키고 유일한 나의 4시간을 오롯이 치료에 집중했다. 이 벅찬 번아웃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여러 검사가 진행되고 결과지가 내 손에 들어왔다.


"혜민 씨. 남편이 오셔야 할 거 같아요. 아니면 약처방받으실 의사는 있나요?"
"왜죠?"
"그동안 힘드셨죠?"


살며시 건네받은 그 질문에 그동안의 무게감이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고개 숙여 눈물만 흘렸다.

어느 날부터, 지인들은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한다.


“이제 너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아이는 점점 좋아지는데 너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져.”


듣기 싫었다. 그 말이 기분 나빠 흘려보냈다.

사실 나의 힘듦의 큰 영역은 아이가 아니었다.



결과지를 남편에게 건네며 상담내용을 전했다.

남편도 아이를 내려놓으라 한다.

그래서 결국 마음속 이야기를 터놓았다.


“내가 상담을 시작한 건, 너로 인한 아픔이야.”


적잖이 당황한 얼굴은 이내 굳어진다.

그런 모습에 나 역시 황당했다.


‘이 사람 나랑 몇 년을 살았는데 진짜 모르는구나.’


그리고 한동안 조용히, 서로 조심히 지냈다. 그러나 습관처럼 굳어진 그의 행실은 또 여과 없이 나왔다.

인사불성, 온갖 원망을 나에게 쏟아낸다.

변화가 없다는 사실에, 입을 닫았다.


다음날, 우린 서류를 앞에 두고 마주했다.


“법정양육비는 줄 테니, 좋게 협의하자.”
“그래. 애들은 내가 키울게. 그동안 고생했어.”


다툼이 쌓여 지쳐있던 그날, 평소와 달리 미안함과 인정이 앞섰다.

당신에게 맞지 않는 나,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맞출 수 없는 나.


'우린 진짜 이렇게 끝이구나.'

불현듯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로 인한 고됨보다 생각이 다른 그가 버거웠다. 그리고 술에 취해 나에게 쏟아내는 그가 비열했다. 어느새 나는 그가 무서웠다.

회식이 있다는 날은 두려워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외로웠다고 했다.

가족을 위해 이른 아침 출근해, 밤늦게 돼서야 돌아온 집의 어둑 컴컴함이 시리다 했다. 따스한 반김을 기대한 그는, 나의 지친 하루의 무심함에 서늘함을 느꼈다 했다. 그는 서운함을 그렇게 표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해하고 싶었지만,

그러나 이해되지 않았다.


“우린 경우가 다르잖아. 애처럼 징징대지 좀 마.”


나는 또 그렇게 남편 마음에 상처를 긋는다.

우린 그렇게 헤어짐을 준비했다.






코앞의 이혼을 두고, 여전히 바쁜 일상이다. 정신없이 보낸 하루의 끝에, 남편은 평소와 같이 일로 집에 오지 못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내게 묻는다.


"아빠는?"
"회사 가셨지. 시후는 아빠 어때?"
"사랑하지. "


나는. 내 힘듦만 앞세우는 것일까.

행여, 아이들에게 아빠를 뺏는 건 아닐까.


사랑한다는 아이의 말에,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지난 몇 년을 오롯이 아이에 집중했다.

남편은 그렇지 못했다.

안 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시기도 있었다.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목표도 달랐다.

난, 포기가 빠른 그가 용서가 되지 않았다.

남편은, 모한 나를 한심하다고 여겼다.


그 결과, 우리 사이에 켜켜이 불만이 쌓였다.

이런 과정은 특별한 아이를 키우는 부부에게 자주 일어난다. 느린 아이를 주제로 모인 네이버카페상에도 이혼에 관한 글은 매일 오르락내리락한다.

단연코, 우리 집만의 일은 아니다.


받아들이기조차 힘들고, 행하는 것은 더더욱 힘이 부친다. 설상가상, 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다.

그 과정에서 의지해야 할 부부는 치열하게 다툰다.

마음의 고됨으로 상대를 돌볼 여유가 사라져 결국, 서서히 멀어져 간다. 그러나 곧, 부부는 힘을 모은다. 이를 위한 것인지, 본인을 위 것인지.


우리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 그 미소가, 돌아선 마음을 되돌리곤 한다.

나 또한 그런 과정 중에 있다.


물론 나의 희망주의와 남편의 극현실주의는,

머지않은 시간 내 또 부딪힐 것이다.

어쩌면, 노트북에 저장된 ‘협의이혼’ 서류의 양식을 쓱쓱 써 내려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린, 앞으로 더 뜨겁게 논쟁하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택하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럼, 언젠가 맞춰지지 않을까.

지난 숨 막히던 과거를 너스레 떨며 웃어넘기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서서히 꺼지는 불씨.

이대로 꺼져도 좋다는 생각에 편안하다.

늦은 시간 그가 퇴근한다.

조용히 뒤로 다가와, 선뜻 피부를 맞대지 못한다.

깊은 한숨, 기분 나쁜 술냄새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미안해, 나 너랑 못 헤어져.”

난,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이른 나이에 만나,

오랜 시간 사랑하고 소중한 아이를 만났다.


아이를 위한 노력이 서운함으로 변해

헤어짐을 결심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웃는 아이를 보며 다시 불씨를 키운다.


어쩌면 우린 서로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쓰럽게 말이다.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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