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장통

그 고통 제게 주세요

죄책감, 사무치는

by 김혜민



2018년 1월 31일 새벽 6시,

아이 없이 홀로 뚜벅뚜벅 밖으로 향한다.

어젯밤 펑펑 쏟아진 눈에 온 세상이 하얗다.

설레는 눈을 밟는 그 순간, 시리고 무겁다.

뽀드득 밟히는 눈은 나를 향해 속삭인다.

'가지 마.'

그렇게 내 근무화를 끌어당기며 붙잡는다.

묵직한 한 발 한 발을 옮긴다.

내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 고뇌하면서 말이다.

어제의 난, 18개월 된 아이를 친정에 맡겼다.

그 대단한 직업을 위해서.


헤어짐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해맑게 웃는다. 그러나 난, 그 가슴 아픈 순간이 잊히지 않아,

밤새 내리던 눈과 함께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1년 후 다시 휴직을 했다.




시후는 아픔에도 웃음을 가져다주는 아이다.

그러나 그렇게 맑은 아이가 웃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들이 있다.


‘감각 불균형에 따른 조절의 어려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불안정은 아이의 얼굴을 굳히고, 이내 답답함과 서러움이 가득 찬 울음을 장시간 내뱉어야 잦아든다.


그 녀석은 그날도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왔다.


“시후야 화장실 다녀와서 자자.”

아무런 인기척이 나지 않아 화장실로 다가간다.


“뭐 해?”
“무서워요.”

온몸을 최대한 끌어당겨 움츠린 채 엎드려 머리를 본인 가슴 가까이에 맞댄다.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괴물이 있어."
“우리 시후 얼굴 좀 보여줄까?”

미동 없는 아이는 그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머리는 흠뻑 젖었다.

1시간이 훌쩍 넘어가며 쌕쌕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그 공포 속에 지쳐 굳어진 몸으로 잠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아이의 불편을 일찍 깨닫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내세워 결국 헤어짐을 강행했다는 죄책감.
내 몫을 엄마에게 떠넘긴 죄책감.
그동안 아이에게 준 공백에 대한 죄책감.


그 무게로, 하루 1분 1초가 절실했다.

한시도 떨어져선 안 됐고, 아무것도 안 하는 1초는 내 숨통을 막는다. 특히, 샤워하는 10여분의 시간은, 내게 가장 불안한 시간이었다.

‘빨리 씻고 나가서 뭐든 해야 하는데.’


아파도 안 됐고, 지쳐도 안 됐으며 허투루 보내는

1분은 무책임이었다.



부모는 아픈 아이를 보고 있자면,

죄책감이란 돌뭉치에 짓눌려 산다.


‘임심 했을 때 두통이 심했는데.

분명 타이레놀은 처방가능한 약이라 했는데.’


의학적으로 괜찮다는 사실조차도,

믿지 못하고 매 순간 나를 의심하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의 모든 슬픔이,

나로 인한 게 아닐까 죄악감에 사로잡힌다.

그 고통은 일정한 압박으로 쪼여온다.






본인도 어찌할 바 모르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본다.

검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엑스를 그리며

‘엄마 안 사랑할 거야!’라고 절규하는 모습. 그리고 이내 따라온 공포에, 힘껏 달려 가슴팍에 안긴다.


이젠 나는 그런 모습을 지켜만 본다. 그리고 다가왔을 때 꾹꾹 일정한 압력을 가하며 몸 여기저기를 마사지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다.


혼란스러운 아이를 바라보며, 이 세상 모든 신에게 기도한다.

‘제발, 그 고통 제게 넘겨주세요. 지켜보는 일이, 너무 가혹합니다.’



감각 불균형에 따른 조절의 어려움으로

감각통합치료, 수영, 특수체육, 심리운동, 등산과 주말마다 외부활동으로 가득 채웠다.

몇 년간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잡히지 않는 녀석이다.

그리고 결국은 약을 선택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이 길. 그리고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아픔은 우리와 함께 걷고 있다.

과연 우린 이 터널의 초입을 지나고 있긴 한 걸까.

아이가 커가며 자연스럽게 약의 용량은 서서히 올라간다. 특히나, 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는 유난히 더 그렇다.


최근 증약된 약으로 오후 3시까지 아이는 입맛을 잃고 미소를 잃었다. 잘 먹고 잘 웃던 아이가 무표정으로 과일 몇 조각 먹는 모습을 바라본다. 참으려 노력하지만 차오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다. 이내 식탁을 박차고 안방으로 들어와야만 조금 편히 울 수 있다.


매 순간 제시된 선택은 얻고 잃음을 안고 있다.

가끔은 득이 많은지 실이 많은지 조차 구분이 안 되는 선택지가 줄줄이 기다린다.

오늘의 문제는 유난히 어려운 문항이다.

그래서였을까.

오늘 가슴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 있었다.

나의 죄책감을 감싸줬던 분.






2023년 2월 24, 지독한 하루다.

울부짖던 아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나쁜 말을 쏟아놓고 미안했던 것일까.


"엄마 미안해요."
"미안할 때만 사과하는 거야. 미안해하지 마."


우리의 고단한 하루 그리고 겨우 잠든 그날밤,

아이를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8살 아이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손끝으로 살살 쓰다듬어 긴장감을 푼다.

이내 두 다리를 쭉 펴 깊은 잠에 빠진다.

미안함에, 속상함에 넘쳐흐른 눈물은 먹먹해서 그칠 줄 모른다.

부디 내일은 조금 더 편안하길.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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