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장통

호기심에 대한 거리두기

서글픔, 까슬까슬한 시선

by 김혜민



미루던 일을 처리해야 하는 오늘,
괜스레 몸 여기저기가 아려온다.



합격과 불합격으로 구분된 시험에, 불합격을 이미 알고 임하는 불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영유아검진이 그렇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꾸역꾸역 간다. ‘이수’라는 도장을 받기 위해 무거움을 장착하고 향한다.






불안이 높은 아이에게 병원은 곤욕이다.

과연 오늘은 협조가 될지,

낯선 환경에 각성이 상승하지 않을지 노심초사다.


내 자식이기에 당연히 내 일이지만,

이 모든 것을 나만 해야 한다는 사실에,

극도의 피로감과 짜증이 한껏 올라온다.


감기 기운까지 있던 그날, 진료차 매일 가던 소아과를 먼저 방문한다. 익숙한 장소에 비교적 수월했으나 귓속을 보는 건 역시나 포기다.

의사도 어느 정도 알기에 강요치 않는다.

바로 이어진 영유아 검진.

당일 바로 가능한 곳으로 옮긴다. 낯선 환경, 병원을 갔음에도 재차 만나는 다른 의사에 심기가 불편한 아이다. 역시나 문고리부터 잡고 안 들어간다.


“주사 안 맞을 거야.”
“오늘은 주사 없어. 키 많이 컸는지만 볼 거야.”


그래도 좀 컸다고 설명하면 어느 정도 협조가 된다. 진료실에 들어갔다.


고민 끝에, 사전 문진표에 ‘발달지연’이라 적었다. 의사는 이것저것 묻는다.

그리고 측은한 눈빛을 내게 보내며 미소 짓는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다.


당신이 보낸 위로의 눈빛에 그 순간 먹먹함이 차오른다.


만나는 이들에게 시후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대는 내 곁에 시후가 있음을 안쓰러워한다.

거짓을 말하지 않았는데, 코가 길어지는지 간질간질하다. 감사히 불쑥 나온 재채기에 눈물을 감춘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나,

매일의 방향이 맞는지 고민한다.

아이가 행복한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도와줘야 할까.


저릿한 가슴 아픔도 잠시,

깊은 고민에 빠지는 그런 날이다.





떨리는 마음 따뜻한 아이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한다.

이제, 초등학생이다.


커다란 덩치로 맨 뒷자리에 착석한 아이, 그 옆에 또 다른 선생님이 앉는다.

몸을 좌우로 흔들흔들, 지루한지 온몸에 힘을 줘 기지개를 켠다. 바로 뒤, 불안한 아이를 지켜본다.


옆에 있던 학부모는 내 아이에게 시선이 놓는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아이를 뒤에서 꼭 안아줄까. 아니야, 학교에는 이제 내가 없는데. 스스로 대처하도록 지켜보자.’


들썩이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켜본다.

그 후로, 담임선생님의 전달사항이 일체 들리는 않았다.


결국, 그 학부모는 당신의 궁금증을 표한다.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실무사님께 묻는다. 속삭이는 그 소리는 내게 들리지 않는다. 다행인지 아닌지.

당신의 의구심은 충분히 이해하나, 그 타이밍이 매우 성급했다는 사실에 불쾌했다.

그러나 난, 어리석게 나서지 못했다. 첫날부터 판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냥,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3월 1일의 불끈불끈 의욕은,

3월 2일의 타인의 무례한 시선에 훅 꺼졌다.

누구와도,

말을 섞기 싫어졌고 얼음장같이 차가워진다.



그날 나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이의 얼굴을 보니, 그 녀석도 나와 같았다.

아침에 뽀얗던 얼굴이, 채 2시간도 되지 않아 회색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역시나, 꽤 오랜 시간 울음을 쏟아냈다.


“유치원 친구들 어디 있어요?”


묻지 않으면 찾지 않던 그 친구들을 외치는 울음 섞인 아이 물음에,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먹먹해서 말할 수 없었다.


모두가 즐거웠던 입학식, 우린 울었다.






아이의 스케줄은 일정하고 바쁘다.

그것을 챙기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몸의 피곤함은 당연한 것인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받는 긴장감과 불쾌함에 마음이 힘든 날이, 간혹 있다.


타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아이의 눈에 띄는 행동.

이상하다’라기보다, ‘아프구나’라는 시선으로

봐주길 바라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정말 아파서 그런 건데 말이다.



아이가 타인에게 상처를 받지 않을까 고뇌한다.

순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단단하게 살아가기 위해, 나는 무엇을 설명해야 할까.

그날 밤 꿈에서도,

난 역시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미움받을 용기일까.






나와 같은 오늘을 보낸 당신,


괜찮다. 이만하면 잘했다. 당신이 맞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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