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친구들과 군 입대를 기다린 그는, 본의 아니게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는 그는 당시 입대가 아닌 면회만 가능한 본인의 현실이 비참했다 한다.
결국 부드러운 눈송이가 어깨에 내리던 날, 까까머리 친구들을 훈련소로 보내고 차가운 나를 만났다. 그렇게 우리 인연이 시작됐다.
한 사람과 15년을 함께 하고 있다. oops.
한결같이 뜨거운 그는, 여전한 나의 차가움을 끌어안는다. 물론 매사 그렇진 않다. 그렇게 다정한 그 임에도, 이해 못 하는 것이 있다.
“또 잘 건데 이불 굳이 개야 해?”
난 흐트러진 이불을 용납할 수 없다.
이불에 공들인 건 꽤 오래전 강요 덕분이다.
10년 전, 경찰이 되고 8개월의 교육이 시작됐었다. 처음 접한 내무반(생활관)의 딱딱함에 유일한 기댈 곳은 겉은 각졌으나 속은 야들야들한 침구였다.
처음부터 각 잡힌 외모를 가진 것은 아니다.
내 딴에 애쓴다고 세운 녀석은, 손 빼기 무섭게 픽 쓰러지기도 하고 초보교육생을 약 올리듯 옆구리에 슬쩍 나온 깃을 제공하기도 했다. 덕분에 지도관의 혹독한 사랑을 받기도 했었다.
그 지긋지긋하던 8개월의 각 세움을, 시키는 이 없는 지금에도 몸이 기억한다. 이렇게 습관이 무섭다.
지난밤, 내 몸을 감싸 안락함을 제공한 민트빛 외투는 건조기의 뜨끈함 속에 어젯밤 잃은 뽀송함을 되찾는다. 있는 힘껏 털어도 한 톨의 먼지 부스러기도 보이지 않는 개운함에 두 팔이 거뜬하다. 펄럭이며 거실 바닥에 사뿐히 내려 요리조리 서로를 맞대 포개본다. 그리고 그 사이 슬쩍 넣은 손으로 허리를 추켜 세워준다.
손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자세를 유지하는 모습에 내 허리에도 힘이 들어간다.
주말이면 침대 위는 아수라장이 된다. 마치 무대에 오른 배우 마냥, 온 동네 장난감을 끌고 와 남편과 두 아이는 뒤엉킨다. 예상대로 이불은 이미 경로를 이탈했다.모두가 즐거운 가운데 미간을 찌푸리는 것은 오롯이 나뿐이다.
“치울 거야, 안 치울 거야?”
결국 단전부터 화를 끌어올려야 바짝 군기든 이등병 마냥 행동이 재빨라진다.
“엄마 화났다. 정리하자 정리.”
남편의 진두지휘 아래,
재빠르게 모든 것이 정리가 아닌, 이동조치 된다.
여유와 게으름의 중립에 선 남편은 눈앞의 행복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좀 더러우면 어때. 애들이 이렇게 즐거운 것을.”
아이들에게 눈을 맞추며 툭 건넨 진심에,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여전히 즐거운 그들, 그 뒤에서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슬쩍의 터치만으로도 스르륵 무너지는 이불에 심혈을 기울인다.우선 정가운데 축을 세우고 손 끝을 야무지게 모아 곁에 가까이 댄다.
긴 호흡과 함께 모든 것을 집중한다.
‘흔들리지 않을 테다.’
내가 세운 건 이불만이 아니다.
매사 진중하고 무거운 아내 옆에, 그 질서를 흩트려 놓는 남편이 있다.
척박한 삶을 우걱우걱 걷는 아내에게,
아스팔트 곁 피어오른 새싹의 설렘을 나누는 남편이 있다.
서로 다른 우린 파릇할 때 만나, 여전히 뒤엉키며 자라고 있다.
“겉도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파.” “뭣이 중한디. 우리가 더 안아주고 사랑해 주면 그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