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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May 24. 2023

찢긴 편지

오늘만 커피에 취하겠습니다



연거푸 커피를 마신다.  
한 잔, 두 잔, 세 잔.



지금 시간 오전 10시 30분.

채워질  함에도 여전히 헛헛하다.

부지런한 우체부 아저씨는 9시 알람과 동시에 내게 흰 봉투를 건넸다.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모요.”


피부결이 느끼듯,

곤두선 시림에 말투가 부드럽게 나가지 못한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뜯고 싶지 않은 봉투를 두 손에 잡고 구깃구깃 짓누르기만 했다. 뒤늦게 애먼 우체부 아저씨에게만 닦달했다. 조금만 늦게 오지. 편히 울지도 못하게.     


조용히 소파 깊숙이 몸을 움츠려 봉투 끝을 찢었다.

첫 장에, 첫 문장에 쓰여 있는 ‘장애정도결정서’.

예고편도 없이 훅 들어온 배려 없음에 먹먹함이 앞선다.

접힌 서류뭉치를 반듯이 하려 할수록 마음의 구겨짐은 어찌할 수 없었다.



바스락바스락.     

시율이는 그 소리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단숨에 다가왔다. 한글을 모르는 아이는 차가운 공기를 읽었는지 곁에 조용히 앉는다. 그리고 작은 손가락을 펴 봉투를 읽는다.


“박시후. 오빠 거야?”


눈가에 차올라도 내보낼 수 없다.

참을수록 아려오는 가슴에,

옷깃을 부여잡는 일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렇지 않은 듯 시율이 손을 잡고 등원길에 오른다.


“시율이 계단으로 갈 거야.”
“계단이 왜 좋아?”
“빨리 가는 엘리베이터 시러. 천천히 계단이 좋아.”     


5살 꼬마는 내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홀연히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누구에게나 알맞은 속도가 있다.

우리 어여쁜 시후의 시간은 다소 느릴 뿐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주변에게 느끼는 사랑을,

시후 세상의 깊은 울림을.


더 오래 즐기라고,

하늘에 계신 그 누군가가 선물해 준 것뿐이다.     


시율이의 말처럼,

천천히 계단이 좋듯,

느릿느릿 시후 삶을 사랑한다.  

        





아닌 척하고 싶지만, 슬픕니다.

오늘만 커피 과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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