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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Jun 12. 2023

섹시한 할아버지

당신도 쉬고 싶죠?



그의 힘이 들어간 팔뚝은 달랐다. 무언가를 이끄는 손끝에 에너지가 가득하다. 굵은 힘줄과 탄탄히 자리 잡은 섬세한 근육은 여느 젊은이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그는 예순보다 일흔에 가까운, 희끗희끗 흰머리가 매력적인 할아버지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살아도 되는 세월임에도, 여전히 묵직한 어깨의 짐을 놓지 못하고 이끌고 있었다.


이른 아침, 훌쩍 커버린 아들을 휠체어에 태워 비탈길을 종종걸음으로 내려가는 그의 팔뚝 더 힘이 들어간다. 손잡이에 묶인 채 속절없이 흔들리는 약 봉투가 야속하다.


봉긋 솟은 팔근육에 비해, 게 팬 그의 이마 위 주름 지난 세월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청춘이다. 어쩔 수 없는 청춘.     

   



장애는 아이도 부모의 선택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와 같은 가족들은 많은 것을 내려놓고 그 길에 담담히 동행한다.     


이윽고 나와 같은 부모를 우연히 만나는 날, 그 담담함은 애끓는 쓰라림으로 전환된다.


그 순간 먹먹한 가슴을 안고 그저 먼발치에서 당신의 삶을 응원할 뿐이다.    




   


소아정신과 정기진료를 마치고 돌아왔다.


“의사 선생님은 시후를 어떻게 보셨어?”
“전형적인 자폐스펙트럼이라고 하지. 그래도 다행인 건 순하대.”
“그렇지 시후가 순하지.”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근데, 어떻게 키워야 할까? 난 요즘 정말 모르겠어.”
“난 그냥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한 거 같아. 지난주 학교에서 그렇게 울던 아이가 이번주는 잘 다니잖아. 그렇게 시후도 하루하루 성장하느라 애쓰고 있으니깐”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우리 부부는 묵직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의 이야기는 오늘을 시작으로 어느덧 성인이 된 시후, 우리가 없을 머나먼 시간까지 거슬러 올랐다.

선명한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끝에, 남편의 어두운 얼굴빛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그 끝에 난, 확신 없는 위로를 건넸다.


“여보. 조그만 녀석이 부단히 애쓰고 있어. 시후의 걸음에, 우리의 입장을 앞세워 끌어당김은 욕심인 거 같아. 몇 년 지내보니, 그보다 중요한 건 우리와 같은 보통의 어른이, 더 나아가 지역사회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나의 생각이 욕심이고 이기적일 순 있다.


그럼에도 난, 장애를 둔 부모가 조금 안도할 수 있는 텀을 지역사회가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집단상담을 갔었다.

마지막 수업의 주제는 ‘지역사회’였다.


동그란 원 안에 놓인 도움이 필요한 아이.

그 주변을 둘러싼 병원, 학교, 지역주민, 공공기관 등.

아이를 중심으로 뒤섞여 흐르는 그 물결의 화살표.

그곳엔 ‘부모’의 탭이 없었다.


부모가 없음에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그 동그란 원에 가슴은 먹먹해졌다.

‘이렇게만 된다면 여한이 없겠다.’


마지막 집단상담 속 참가자들 모두의 눈시울은 이윽고 뜨거워졌다.


난 그 동그라미에 위로받았다.     





아침에 만난, 우리와 같은 가족의 모습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남이지만 먼 훗날 나의 일인 그 장면에 지나치게 몰입했다.

 

예전 불편함을 안은 아이에게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면 그날은, 유독 할아버지에게 시선을 놓을 수 없었다.


무표정, 어두운 얼굴빛, 주위 시선의 불편함보다 당장의 힘듦을 빠른 시일 내 끝내고 싶던 무게감,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흔히, 우리네 삶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전속력으로 달리지도 말고, 옆 사람보다 조금 빠르다고 흥분하지도, 조금 뒤처진다고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의 보폭에 맞혀 그냥 걷는 일, ‘’다.

중꺾마 :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줄임말



   


동그란 세상에 살고 싶어졌다.


나와 당신이 맞잡은 그 원 안에서 아이는 편안한 미소로 뛰어논다.


그 여운에 우린 안도감을 느끼고,

당신이 세운 울타리 안에 아이는 행복하다.   

  

오늘 만난 얼굴이 동글동글하던 젊은 할아버지의 편안한 팔근육을 그려본다.


순간, 행복한 상상에 빠진다.     



·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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