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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Jun 14. 2023

아들을 울린 고약한 줄넘기


6월 13일 화요일 날씨 : 더워

제목 : 줄넘기

너무너무 싫어해.

너무 어려워.

체육 시간에 울었어.

선생님 하트 찌즐거야(찢을 거야).

엄마. 줄넘기 싫어요.







아니야!!!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착한 특수체육 수업, 무지개 빛 줄넘기와 함께 등장한 체육 선생님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시후는 격하게 거부했다.

선생님과 난, 귀여움이 가득 찬 아이의 외마디에 얕은 미소를 보냈으나 시후는 진심을 듬뿍 담았다. 그러나 순한 시후는 이내 선생님 손을 잡고 터벅터벅 교실로 향했다.


대기실 cctv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벼운 줄넘기 줄은 묵직한 덩치를 쫒지 못한다.


쿵, 찰싹. 쿵, 찰싹.

매번 먼저 도착하는 통통한 발 앞에, 얄미운 줄은 뒤늦게 따른다.


“안 할 거야!”

결국 드러눕기 시전을 펼다. 자기 딴에 꽤나 머리 써서 취한 행동이었으나, 체대 나온 젊은 남자 선생님에겐 통할 리 없었다.


“박시후. 일어나. 꾀부리면 엄마 가시라 하고 선생님이랑 더 할 거야.”


서러움에 복받쳐 그렁그렁 눈물을 턱 끝에 가득 안고서야 벌떡 일어났다. 남은 힘을 쥐어짠 아이는 폴짝폴짝 마지막을 장식했다.


“봐봐. 우리 시후 잘할 수 있잖아!”
“끝났어? 끝이야?”
“응. 끝이야. 잘했어.”

40분 고강도 수업이 끝나고, 마침내 교실 문이 열렸다.


“아들, 힘들었어?”

얼굴을 마주한 아이는 나의 가슴팍에 파묻혀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잔뜩 망가트린 얼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 그저 사랑스럽다.(도치맘)


그러나,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줄넘기, 그게 그렇게 중요해?






줄넘기를 시작한 지 100일이 넘어간다.


시후는 운동신경과 에너지가 좋은 편이나,

자신의 신체를 이미지화하여 인식하고, 움직이는 과정상에 어려움이 있어 그 협응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

바로 감각처리 능력이 다르다.


한마디로, '내 몸이 왜 이러지!' 이런 느낌이다.

따라오지 않는 팔, 다리. 함께 섞이지 못하는 엉뚱함은 이내 사기를 떨어뜨린다.     



나라도 지긋지긋할 줄넘기, 그동안은 수업 시간 외에 시후 눈앞에 놓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수업에서  자리 잡힌 아이의 자세를 보고 슬그머니 거실 한편에 무심한 척 툭 떨궜다.

어슬렁어슬렁, 집안 이곳저곳을 누비던 아이는 줄넘기를 집어든다. 양손에 움켜쥐고 휙 돌려  폴짝 넘는다.


“우아! 우리 아들 잘한다.”

씩 웃으며 또 휙 돌린다.


한 번씩 끊어가는 줄넘기 사이, 무한 애정을 쏟는다.

뿌듯함이 가득 찬 아이는 그렇게 몇 차례 반복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나 역시 더 이상 강요치 않다. 그저 미처 끝내지 못한 설거지를 위해 고무장갑을 야무지게 착용한다. 아이와 등져 하얀 거품을 가득 채운 싱크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이윽고 아이의 목소리가 등을 감싼다.


“엄마. 줄넘기 또 할 거야!”


드디어 줄넘기에 대한 욕구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팔은 쭉 펴고

다리를 모아

힘차게 돌린 줄이 눈앞을 지나가는 그 시점

있는 힘껏 점프한다.


아. 번갈아 오른 두 다리로

발 사이 하늘색 줄이 놓여있다.     


무심한 듯 쓱 다리로 고쳐 세워

더 높이 오른다.    

 




얇은 줄 하나를 넘는 일, 시후에게 허들을 넘는 것과 같다.

어쩌면 시후 삶에 줄넘기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힘든 이 과정을 포기하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이유는, 오롯한 해냄을 통한 성장이다.

    

시후 스스로 찾아가는 ‘넘김’이,

앞으로 맞이할 너의 작은 언덕들을 우직하게 넘길 빛이 되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다.        


뒤뚱뒤뚱 박시후, 사랑해.


엄마. 하트하자 /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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