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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민 Jun 21. 2023

8살 아들에게 생긴 신분증

사진은 빼주시면 안 될까요?



네모 프레임 속 환하게 웃는 시후가 있습니다.

행여 내 아이의 맑음이

‘장애정도 중증’에 가려질까 겁이 났습니다.


멈추고 싶지만,

차오른 뜨거운 것을 거스를 용기도 없습니다.


아이의 장애 복지카드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웁니다.

오롯이 쏟아내야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깐요.






장애등록을 마음먹은 건,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였다.

사실, 나의 결심은 늦은 편이다.

하고 싶지 않았다. 미룰 수 있다면 최대한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학교 안 시후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고 나와 타인의 시선엔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공식화하지 않음이, 나의 욕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 후 멀지 않은 시간 내, 시린 신분증은 나에게로 왔다.


미소가 이쁜 우리 시후는 너무 이른 나이에, 자신을 증명할 카드를 받았다.






비용도 만만치 않은 장애등록을 위한 검사’


불현듯 정기적으로 뵙던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권유를 받았다.

“시후 등록하는 건 어때요? 행여 받게 될 오해로부터 방패가 되어줄 수도 있어요."


그리하여 진행된 검사에서 아이는 2시간 넘는 시간 동안 낯선 페이퍼를 앞에 두고 실랑이가 시작됐다. 흐려지는 초점, 차오르는 짜증, 결국 맛보는 각성, 결국 아이를 대변할 결과지에 낯선 시후뿐이었다.


손 끝에서 떨어지지 않던 먹먹한 페이퍼를 장애등록을 위해 제출했다. 한 달여를 기다렸을까, 원치 않은 그 소식은 ‘장애정도결정서’라는 이름으로 도착했다. 채 뜯지 못한 봉투를 이리저리 주물러도 빳빳한 무언가가 잡히지 앉았다.


‘복지카드가 누락됐나?’


누구 하나 절차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묘연한 복지카드의 행방에 대해 의문투성이었다.


부모가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등록을 결심함에 있어 수많은 내적 갈등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내 아이를 위한 일임에 확신이 서는 순간,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그렇게 수년간 다지고 다진 가슴은 ‘장애정도결정서’를 받는 순간 흔들리고, 이쁜 아이 얼굴이 들어간 복지카드를 마주하며 결국 주저앉는다.


강인하다 생각했던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배려 없는 정책 덕분이다.


‘장애인’이 공식화되며 ‘장애인 복지서비스’라는 명목 아래 얻게 되는 일련의 무엇들이 있다.

발달재활서비스, 장애인자동차 표지 발급, 소소한 세금 할인, 장애인 활동 지원 등이 해당된다. 그러나, 이 서비스는 누구에게나 제공되는 것은 아니고 세부적 조건이 부합되고, 필요 서류를 각자 찾아보고 구비해야 비로소 신청할 수 있다.  

   

복지카드 역시, 장애정도 결정서를 구비하고 재차 주민센터 신청해야만 했다.(이 역시, 박소연선생님이 알려주지 않으셨음 여전히 장애정도 결정서만 붙잡고 울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받았다.     


발달재활서비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애등록 이후 신청 시 구비서류 없이 주민센터 방문 후 신청서 작성만으로 해당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우린 구비서류를 한차례 더 준비해 신청서를 작성했었다. 이유는, 담당하는 공무원의 미흡한 절차 안내 덕분이었다. 재차 받은 언어검사 비용과 시간들의 속상함에 속이 쓰렸지만, 업무의 특성을 이해하고 넘겼었다.

(발달재활 서비스 구비서류 : 의사의 의뢰서, 세부영역검사서, 건강보험자격확인서, 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 보호자 신분증)

 


아픈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선 우린, 아무 말 없이, 아픈 아이를 옆에 끼고 재차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조금만,

불편한 아이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동행하는 부모의 걸음걸음을 상상한다면

비교적 배려있는 정책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아쉬움을 담아본다.






이쁘죠?

제가 사랑하는 우리 시후입니다.

비록 지금 작고 각진 네모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지만,


이 아이의 멀지 않은 내일에는,

함께하는 사회 안에서 환하게 웃으며 살아갈 세상을 꿈꾸며 걸어가겠습니다.     


그 걸음에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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