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장통

somebody help me.

by 김혜민



화려한 아우라, 웃지만 울고 있는 아이는 시후였다.

다가가려 애써도 굳어버린 발은 음을 쫓지 못한다.

잡으려 애쓸수록 닿을 듯 말 듯 손끝만 간지럽히다,
겨우 스친 따뜻한 부드러움은 이내 스르륵 빠져나갔다.

아무 말 없이 원망만 가득 찬 아이는 저 멀리 멀어져 갔다. 남은 건 그저 쓸모없는 몸뚱이와 소리를 잃은 절규뿐이었다.





어둠 속 더듬더듬, 곁을 확인하고서야 안도했다.
힘껏 안고서야 내려앉은 가슴은 진정됐다.
그럼에도 축축한 베갯잇은 쉽사리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아이를 잃는 악몽에 시달린 지 칠째다.

그 후로 잠들기가 두려워졌다.








오늘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아이는 몸서리친다. '시후 슬퍼'라는 말만 늘어놓고 이유를 건네지 못하는 절규에 가까운 고통은 꽤 오랜 시간 지속됐다.

무뎌질 만도 한데, 말랑한 가슴은 아이의 울부짖음에 사정없이 찢겼다.

이리저리 주무르고 압을 가해보아도 스치는 찰나일 뿐, 할 수 있는 건 그저 곁을 지키는 것뿐이다.

무능하기 그지없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다. 피부결을 베는 듯한 날카로운 스침, 오랜 대기시간과 짧은 진료를 감수하며 서울대 재진을 다녀왔다.
그날의 수고로움을 아이와 강행한 이유는 하나다.


"선생님, 감각적 불균형으로 오는 불편함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나요?"

"치료방법이 없습니다. 조절능력을 키우는 방법뿐이죠."



시후는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 서있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고, 낯설고 불쾌한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을, 스스로 익혀야 한다.

어미인 난,
그저 힘내라고, 가슴만이라도 가득 채울 끌어안음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병원을 다녀오고, 기분이 좋은지 오늘은 얼굴빛이 맑다. 아빠와 놀이에 한창인 아이에게 다가갔다.

"엄마 나갔다 와도 돼?"
"절대 안 돼."
"혼자 커피 한잔만 하고 올게."
"핸드폰 두고 나가세요."
"이 녀석!"



버거운 삶을 여전히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반짝이며 곁을 채우는 아이 덕분이다.

설명 안 되는 복잡한 변화 속,
무너지는 순간이 다수인 요즘이지만
상상이상의 진심을 담은
느리지만 재치를 가득 채운 언어마술로
엄마 가슴에 위로를 심어주는 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락된다면,

아이의 아픔, 제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맑은 얼굴에 짙어지는 어둠을 지켜봄이, 쉽지 않습니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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