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한 틈을 비집고 들어온 7월의 감기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지끈지끈 올라온 두통에, 목 뒤를 침대 모서리 끝에 맞대어도 차도가 없다.손끝을 세워 지그시 누르기도,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그가 다가왔다.
“이번 인사이동 때 타청 신청하자.”
(타청신청: 고충사유로 타 시도로 인사이동을 요청하는 제도)
겨우 달래던 고통은 그의 한마디에 내 손을 벗어나 결국 약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정수기 옆에 기대어 타이레놀을 입술 사이에 얹고 우두커니 섰다. 그러나 없는 차선책으로 물과 함께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쓴 기운을 그에게 뿜어냈다.
“누구를 위해 가는 건데?” “가면 부모님이 도와주시잖아.” “휴. 부모님 삶은 생각 안 하니.”
지난 6년 나의 자발적 휴직으로 인해, 비교적 자유로웠던 남편이다. 그러나 복직을 한 달 앞둔 남편은 모든 것이 두렵다. 그럼에도 받아들이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현재 자리를 내려놓기도,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아이의 아픔을, 회사에 터놓기도 했다.
불과 한 달여 사이, 남편을 향한 위치와 시선은 순식간에 특별해졌다.그 혼란 속, 어두워진 남편이 찾은 유일한 곳은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이었다.
2023년 발달장애인 전 생애 권리기반 지원체계 정책요구안의 ‘부모의 삶 현황’에 의하면,
일상생활 시 부모나 가족이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경우는 88.2%에 달한다. 특히 어머니가 그 역할을 담당하는 정도는 91.7%, 즉 어머니의 몫이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돌봄’을 이유로 부모나 가족이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경우는 49.2%를 차지하고 있다. 곧 2명 중 1명 꼴, 그 한 명이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은 피할 수 없다.
그러기에, 그 버거운 짐에서 조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절실해진다.
나의 안쓰러운 남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의 생활 영역에서, 앞으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롯이 해야 할 역할에 지레 겁을 먹은 남편은 그 두려움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이해는 됐으나, 무른 그의 마음에 순식간에 가슴이 차가워졌다. 그리곤 매섭게 그를 몰아세웠다.
“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지 마.” “야간근무하면서 아이케어까지 정말 자신 있어?” “자신 있고 없고를 떠나서, 우린 무조건 해야 하는 거야. 내 자식이잖아.”
아이의 삶이 우선인 아내와 부부의 삶이 우선인 남편은 오늘도 치열하다.
“시후는 할머니집이 좋아? 서울이 좋아?” “서울!”
아이는 아직 ‘서울’이 가진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집돌이 시후는 서울에 있는 ‘본인 집’이 좋을 뿐이다.
나에게도 서울은 그런 의미다.
아이들 하루에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는 요소들이 충만한 삶을 세워가고 있다.
인사를 먼저 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주는 어른을 만나고,
만나지 못해도 늘 마음과 일기로 마음을 전하는 선생님이 계시고,
원인 모를 울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시간을 내어주는 주변이 있다.
그들과 맞잡은 손이, 아직은 단단하기에, 우리는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아이가 지금의 울타리가 버겁다고 말한다면,망설이지 않고 의견을 존중할 것이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그러기 전까진 서울에서, 아이의 든든한 울타리를 키우는 것에 마음을 담으려 한다.
20대 연애할 적 뽀얗던 그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회색빛 낯에 깊게 파인 주름으로 내 가슴을 혼란하게 한다.
퍽퍽한 그의 피부와 달리, 오늘도 아이 생각에 출렁이는 그의 가슴은 촉촉하다.이 기세를 몰아, 시후는 더 매몰차게 아빠를 몰아세운다.
“아빠 사랑해요.” “아빠도 시후 사랑해.” “슈퍼마리오 게임 30분만!” "넌 아빠가 게임으로 보이냐?"